일본 정부가 4일 0시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 강화 조치를 발동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에 대한 사실상의 경제 보복조치 ‘1탄’을 예고대로 실행에 들어간 것이다. 외교 문제에 통상을 끌어들인 것으로, 자유무역 원칙에 역행할 뿐만 아니라 한·일 양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이날부터 수출 규제를 강화한 품목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기판 제작 때 쓰는 감광제 리지스트, 반도체 세정에 사용하는 에칭가스(고순도불화수소)다. 지금까지는 한 번 포괄 허가를 받으면 3년간 개별 품목에 대해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됐지만, 이날부터는 개별 제품을 수출할 때마다 심사를 거쳐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에 걸리는 시간은 약 90일 정도지만, 기업이나 품목 등에 따라 그 이상 소요될 수도 있다.
한국 기업들은 플루오드 폴리이미드는 전체의 93.7%, 리지스트는 91.9%를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에칭가스는 일본산(43.9%)과 중국산(46.3%)의 비중이 비슷하다. 이번 제재로 삼성·LG 등 한국 기업의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물론, 이들 기업으로부터 반도체를 공급받는 전 세계 관련 업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이번 조치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안전보장상의 이유’를 들고 있지만,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자신들이 원하는 후속 조치를 하지 않는 한국 측에 대한 보복성 조치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3일 강제징용 판결과 위안부 합의를 들면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국가에는 우대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일본의 행태에 대해 “무역을 정치 도구로 사용” “자유무역 원칙에 역행” 등의 비판이 국내외에서 잇따르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날자 사설에서 “외교 문제와 전혀 관계가 없는 무역 절차를 가지고 나와 정치의 도구로 쓴 것”이라며 “일본이 중시해온 자유무역의 원칙을 왜곡했다”고 지적했다. 또 이번 조치가 한국에 반도체 소재나 설비를 수출하는 일본 기업뿐 아니라 한국에서 반도체를 납품받아 완성품을 생산하는 자국 제조사에 피해를 주는 ‘부메랑’이 될 것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은 전날 “안보를 위한 관리”라고 주장하면서 “철회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수출관리 체제를 계속해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혀 제재 강화 대상 품목의 확대를 내비쳤다.
일본 정부는 수출 규제 강화 조치의 ‘2탄’도 예고하고 있다. 군사전용 가능성이 있는 품목에 대해 허가 신청을 면제해주는 ‘화이트(백색)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고 수출 규제 강화 대상 품목을 확대하는 방안을 진행하고 있다. 업계 의견을 듣는 공청회를 거쳐 오는 8월 중에 시행령을 개정해 발효한다는 계획이다. 이럴 경우 규제 대상이 공작기계나 탄소섬유 일부 등으로 단숨에 확대된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일본 정부는 또 관세 인상, 송금 규제, 한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 절차 강화 등도 추가 보복 조치로 거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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