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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일본 정치

미국 눈치 보랴, 회원국 신경쓰랴...고심 깊은 일본

 “관련 발언은 없었다.”
 일본 오사카(大阪)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공식 개막에 앞서 28일 오전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간 정상회담에 대해 일본 언론들이 일제히 전한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서 미·일 안보조약이나 미·일 무역협상 합의 시기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았다며 가슴을 쓸어내린 것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G20 참석을 위해 오사카로 출발하기 직전 “일본은 미국이 공격당하면 소니TV로 구경만 할 것”이라면서 미·일 안보조약이 불공평하다고 불만을 쏟아낸 바 있다. 안보 문제를 무역이나 방위비 분담 문제와 연계시키려는 전략으로 해석됐다. 이에 일본 정부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안보조약 개정 얘기는 일절 없다”고 밝하는 등 노심초사했다.
 이날 정상회담으로 미·일 정상은 석 달 연속 정상회담을 했다. 미·일 간 ‘밀월’관계를 과시했지만 일본 입장에선 살얼음을 걷는 심정이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모두발언에서 “무역, 군사, 국방 무기 구입에 대해 논의하고 싶다”고 일본을 압박했다.
 양 정상이 이번 회담에서 내놓은 것은 미·일 무역협상의 조기 성과를 위한 각료급 교섭 가속화, 미·일 동맹 강화 등 앞선 회담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아베 총리가 회담 모두에 밝힌 “G20에서 세계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향한 강력한 메시지를 내기 위한 협력”도 원론적인 수준이다.
 일본의 고심은 이걸로 끝난 게 아니다. 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의 조율 능력도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 제일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의 눈치를 보면서도 회원국 간 의견을 조정하고 결론을 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역마찰을 둘러싼 미·중의 대립이 공동선언 채택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도 최소화해야 한다.
 이미 일본은 미국을 고려해 29일 폐막과 함께 발표될 공동성명 초안에서 ‘보호무역주의에 대항한다’는 취지의 문구를 빼는 대신 ‘자유무역의 촉진’이라는 완화된 표현을 넣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이 회원국 대부분이 공유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 반대’라는 자세를 관철하면서도 미국이 납득할 표현을 어떻게 도출할 것인지가 과제라고 전했다.
 일본은 환경 분야에서도 파리기후협정 탈퇴를 공언한 미국의 의중을 알아서 헤아리고 있다. 공동성명 초안에는 ‘기후변동에 대처한다’는 지난해 G20 공동선언 문구 대신 ‘긴급한 필요성 인식’이라는 후퇴한 표현이 사용됐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쾌해 할 ‘지구 온난화’라는 표현도 사라졌다. 이와 관련,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26일 “파리기후협정을 언급하지 않으면 프랑스는 (공동성명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알맹이를 뺀 합의’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못박은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27일 G20 개막에 즈음한 기자회견에서 “의견의 다름보다 일치점이나 공통점을 찾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치점을 찾아내려 할수록 메시지가 희미해지는 딜레마가 있다고 니혼게이자이는 지적했다. 공동성명에서 보호무역주의나 기후변화 관련 내용이 미국 쪽으로 치우친다면 의장국 일본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