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최근 불거진 ‘연금 논란’을 덮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노후자금으로 2000만엔이 필요하다’는 금융청 보고서를 공식자료로 받아들이지 않는 등 막무가내식 대응까지 하고 있다. 제1차 아베 내각을 퇴진으로 내몬 ‘사라진 연금 문제’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을 우려한 것이지만, 논란은 좀체 사그라들지 않는 모습이다.
이번 논란은 지난 3일 재무성 산하 금융청이 ‘고령사회의 자산 형성·관리’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촉발됐다. “연금 생활을 하는 고령 부부(남편 65세 이상·아내 60세 이상)의 경우 연금 수입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30년 간 더 살기 위해선 약 2000만엔(약 2억1900만원)의 여분 저축이 필요하다”는 보고서 내용이 논란을 불렀다. ‘정부가 연금 정책의 실패를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이 확산된 것이다. 야당에선 아베 총리가 2004년 자민당 간사장 당시 연금개혁을 추진하며 ‘100년 안심’이란 슬로건을 내세웠다는 점을 부각키면서 “이제 와서 국민들에게 노후를 위해 2000만엔을 더 모으라고 한 것은 무책임하다”라고 비판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정부·여당은 일제히 진화에 나섰다.
아베 총리는 “노후에 30년간 2000만엔의 적자가 있는 듯한 표현은 오해와 불안을 확산하는 부적절한 표현”이라면서도 “100년 안심은 거짓말이 아니다. 현역과 미래 세대를 포함해 모두 안심할 수있는 제도 설계”라고 해명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은 더 나갔다. 그는 11일 “세상에 불안이나 오해를 주고 있어 정부의 입장과 다르다”면서 “담당 장관으로 공식 보고서로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소관 부처인 금융청 탓을 하면서 정부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모리야마 히로시(森山 裕)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도 12일 야당이 요구하는 예산위원회 개최에 대해 “(재무성이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아) 보고서 자체가 없어졌기 때문에 예산위원회를 개최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보고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발언이다.
이를 두고 보고서 작성에 참석한 전문가들로부터 “진지하게 논의를 해왔는데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마이니치신문은 “전대미문의 부조리극”이라고 전했다.
정부·여당이 조기 진화에 안간힘을 쓰는 것은 7월 참의원 선거를 의식한 때문이다. 이번 논란이 참의원 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1차 내각 때인 2007년 9월 참의원 선거 때 ‘사라진 연금 문제’로 대패한 뒤 퇴진으로 몰린 바 있다. 당시 정부가 국민들의 연금 기록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과정에서 5000만명 분의 연금 기록 일부를 누락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을 빚었다.
아베 정권과 자민당의 조기 진화 노력이 주효할 지는 미지수다. 당장 야당은 이번 문제를 ‘사라진 연금’에 빗대 ‘지워진 보고서’라면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마이니치신문은 13일 ‘30년간 2000만엔이 필요하다’는 금융청 추산의 근거 자료는 후생노동성이 제시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금융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후생노동성 과장이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지는 고령 부부의 상황 자료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마이니치는 “아소 부총리는 ‘정부의 입장과 다르다’면서 보고서 수리를 거부했지만 실제 (보고서는) 정부의 생각을 답습한 것”이라면서 “아소 부총리 설명과는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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