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청 멍청이들. 이런 걸 쓰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지난 10일 주위에 이렇게 말했다고 아사히신문이 19일 전했다. 참의원 결산위원회에서 야당에게 ‘노후자금 2000만엔(약 2억1900만원) 부족’ 문제를 추궁받던 때였다.
이번 문제는 지난 3일 금융청이 발표한 보고서의 “연금 생활을 하는 고령 부부의 경우 30년 간 약 2000만엔의 여분 저축이 필요하다”는 내용으로 촉발됐다. ‘정부가 연금 정책의 실패를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이 확산됐다.
아베 총리가 격노한 데는 12년 전의 ‘악몽’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1차 내각 때인 2007년 9월 참의원 선거에 ‘사라진 연금’ 문제로 대패한 뒤 퇴진 위기에 몰렸다. 당시 정부가 연금 기록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과정에서 5000만명 분의 연금 기록 일부를 누락한 사실이 밝혀진 데 따른 것이다. 아베 총리에게 연금 문제는 ‘귀문(鬼門·꺼리고 피하는 것)’이라고 아사히는 전했다.
아베 총리의 격노를 배경으로 총리 관저가 사태 수습을 위해 움직였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지난 11일 재무성과 금융청 등에 연락해 ‘보고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례적인 대응을 지시했다고 한다. 그 직후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금융담당상이 “정부 입장과 다르다. 공식 보고서로 받지 않겠다”라고 했다. 일주일 전에는 보고서에 이해를 표시해놓고 태도를 싹 바꾼 것이다.
당초 금융청에선 보고서를 고쳐쓰겠다고 했지만, 총리 관저 측이 “초기 진화에 실패하면 건물이 통째로 탈 수 있다”고 문제에 ‘뚜껑’을 덮자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모리야마 히로시(森山 裕)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은 “보고서 자체가 없어졌다”며 야당이 요구하는 예산위원회 개최를 거부했다. 국회에서의 논의를 피함으로써 참의원 선거에서의 쟁점 이탈을 노린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대응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교도통신이 지난 15~1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정부의 이런 대응이 “문제다”라는 의견이 71.3%에 달했다. 같은 시기에 각각 실시된 3개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3% 포인트 안팎 하락했다.
야당도 아베 정권의 ‘은폐 본질’을 또다시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7월 참의원 선거 쟁점의 하나로 자리매김할 방침이다. 19일 1년 만에 열린 당수 토론에서도 야당의 화살은 금융청 보고서에 대한 아베 정권의 대응에 맞춰졌다. 에다노 유키오(枝野代表) 입헌민주당 대표는 “안심만 강조되고, 유권자의 불안과 마주하지 않는 데 대해 많은 이들이 화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베 총리는 “큰 오해가 생겼다. 중요한 것은 연금생활자의 다양한 생활 실태에 제대로 대응해 나가는 것”이라고 피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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