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2일부터 사흘 간 이란을 찾는다. 현역 일본 총리의 이란 방문은 41년 만이다.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미국과 이란 간 중재를 통해 국제 무대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한편 7월 참의원 선거에 외교 성과로도 내세우려는 의도지만, 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 총리로 41년 만...이란과 우호관계 기대
11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이란을 방문해 12일 하산 로하니 대통령과 13일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회담할 예정이다. 일본 총리의 이란 방문은 1978년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총리 이후 41년 만이다.
일본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이란 방문은 지난 4월 아베 총리의 미국 방문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요청했고, 지난달말 트럼프 대통령 방일 때 확정됐다. 지난달 26일 밤 도쿄 롯폰기에서 만찬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신조가 이란에 갈 생각이라면 서둘러 갔다오면 좋겠다. 나는 군사충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아베 총리는 11일 오전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회담을 하고 이란 방문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에 중개 역할이 돌아온 배경에는 국제사회의 구조 변화가 있다. 이란의 핵개발을 제한하는 2015년 합의는 유럽과 미국이 주도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탈퇴를 표명하고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재개했다. 합의를 추진한 유럽 각국은 정권 기반이 흔들리고, 트럼프 대통령과도 거리가 있어 중개 역할을 맡기 어려워졌다.
반면 일본은 석유 거래 등을 통해 이란과 일정한 우호관계를 유지해왔다. 1951년 이란이 석유국유화를 단행했을 당시 일본 기업 선박이 영국의 해상 봉쇄를 피해 이란 석유를 대량으로 사들여 이란 국민이 기뻐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서구 국가들이 이라크 지원으로 돌아선 이란·이라크 전쟁 때도 일본은 중립 외교를 지켜왔다.
아베 총리도 이란과 인연이 있다. 부친인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외무상이 이란·이라크 전쟁 중인 1983년 8월 이란을 방문해 당시 대통령이었던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만났을 때 비서관으로 동행했다. 아베 총리는 2013년 이후 유엔 총회에 맞춰 6년 연속으로 로하니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했다.
이란 입장에서도 ‘신조·도널드’로 서로를 부르는 트럼프 대통령과 친밀한 아베 총리에 중재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은 지난달 일본을 방문해 “아베 총리가 말하는 것이라면 트럼프 대통령도 귀를 기울일 것”이라면서 일본의 역할에 기대를 드러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서방 지도자와 거의 만나지 않는 하메이니 최고지도자가 아베 총리와 만나기로 한 것 자체가 이란이 긴장 완화를 모색하고 있는 방증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중재 결과는 불투명...“외교 퍼포먼스” 지적도
아베 총리가 중재를 맡은 데는 중동 지역에서 존재감을 높이고 미·일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란 방문을 외교적 성과로 포장해 정권 부양에 이용하겠다는 속내도 엿보인다. 아베 총리는 그간 ‘외교의 아베’를 자임해왔지만,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북·일 정상회담이나 쿠릴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과 관련한 러·일 평화교섭 등 주요 외교방침은 벽에 부딪친 상황이다. 이란 방문이 “꽉 막힌 외교에 대한 시선을 돌리려는 퍼포먼스”라는 지적도 나온다.
아베 총리는 이란 측에 미국이나 관계국의 생각을 전하고, 긴장 완화의 중요성을 강조할 방침이다. 오는 28일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9월 유엔 총회에서 미·이란 대화의 흐름을 만드는 게 목표다. 이란 방문 성과를 G20 정상회의 의장 선언에 담아 차기 의장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평화적 해결을 요청하는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는 이란 정상도 참석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미·이란 대화가 성사되면 중개 외교가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미국과 이란 간 대화의 실마리를 풀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과거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한, 이라크와 함께 이란을 “악의 축”이라고 부르는 등 미국과 이란의 관계 악화는 뿌리가 깊다. 특히 이란 지도부는 일방적으로 핵 합의를 무시한 트럼프 정권에 대한 불신감이 강하다. 하메이니 지도자는 지난 4일 “미국에 대한 저항은 얼마간 비용이 들지만, 항복은 더욱 커다란 대가를 동반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탄도미사일 개발 중지와 시리아 철수 등을 담은 ‘새로운 딜’을 요구하지만 이란으로선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란은 일본이 트럼프 대통령의 방지 역할을 담당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단순한 메신저인지, 트럼프 대통령에게 타협을 촉구할 중재역인지 지켜볼 것으로 보인다. 이란 외교소식통은 아사히신문에 “경제적으로 알맹이가 따르지 않는 제안을 하는 것뿐이라면 이란으로선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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