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일본 가와사키(川崎)시에서 51세 남성이 학교 버스를 타려던 초등학생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2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치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 발생 일주일이 지났지만 일본 사회의 충격은 가시지 않는 모습이다. 일본 사회가 껴안고 있는 고민거리들이 드러난 까닭이다.
이 남성이 범행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정확한 동기를 규명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상 일본 사회에 수 차례 충격을 안긴 ‘도리마 사건’으로 규정짓는 분위기다. 일본에선 특별한 동기 없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위해를 가하는 것을 ‘도리마(거리의 살인마) 사건’이라고 한다. ‘묻지마 살인’인 셈이다.
도리마 사건은 2008년 아키하바라(秋葉原) 사건을 통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당시 도쿄 번화가인 아키하바라의 ‘보행자 천국’(차 없는 도로)을 한 남성이 트럭을 몰고 돌진해 행인들을 친 뒤 차에서 내려 흉기를 휘둘렀다. 이 사건으로 7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범인은 여러 회사를 전전하던 비정규직이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 대상은) 누구라도 좋았다”고 했다. 일본 경찰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도리마 사건이 해마다 4~14건 발생했다고 도쿄신문은 전했다.
이번 사건이 18년 전 이케다(池田)사건을 상기시킨다는 지적들도 많다. 2001년 6월 한 남성이 오사카교육대 부속 이케다초등학교에 흉기를 들고 침입해 초등학생 8명을 숨지게 하고 15명을 다치게 했다. 이케다 사건과 이번 사건은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약자인 어린 아이들이 습격을 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학교 버스는 일본 정부가 지난해 6월 발표한 ‘등·하교 방범 계획’에서 통학 안전 대책으로 꼽혔다. 학생들이 학교 버스를 타려고 할 때 갑자기 공격을 당한 이번 사건은 일본의 안전 대책에도 과제를 던졌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또하나 회자되는 용어가 ‘확대 자살’이다. 자살을 바라는 사람이 아무 관계가 없는 이들까지 끌어들여 지금까지 쌓아온 사회에 대한 울분을 풀려고 한다는 것이다. 앞서 이케다 사건의 범인도 “인생의 막을 내릴 때는 많은 사람들을 길동무로 삼으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범죄심리학자인 하라다 다카유키(原田隆之) 쓰쿠바대 교수는 NHK에 “자살이 목적이지만, 사회의 주목을 더 모아서 더 큰 것을 저지르겠다는 왜곡된 심리”라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범인의 연령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확대 자살은 공격성이 가장 높은 연령대인 20~30대가 많은데 범인은 50대다. 왜 지금까지 이런 ‘마이너스 에너지’를 쌓아온 걸까. 그는 오랫동안 취직을 하지 않으면서 함께 살던 고령의 삼촌 부부와도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장년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라는 데 방점이 찍히고 있지만, 히키코모리를 ‘범죄예비군’으로 보는 편견을 조장한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사건이 일어나자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선 가와사키시에 적지 않은 재일한국인(조선인)이 산다는 점 등을 근거로 “범인은 재일조선인”이라는 유언비어가 확산됐다. 흉악 범죄나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나오는 ‘헤이트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 혐오 발언)’가 반복된 것이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2016년 4월 구마모토 지진 이후에도 이런 악성 루머가 퍼졌다. 일본 사회에 잠복해있는 ‘민족 차별’이 또 얼굴을 내민 셈이다.
지난 3일은 일본에서 헤이트스피치 억제법을 실시한 지 3년째를 맞은 날이다. 이 법은 시행 이후 헤이트 집회가 감소하는 등 일부 효과에도 불구하고 이념법의 한계가 지적돼 왔다. 지난달 29일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열린 집회에서 저널리스트 야스다 고이치(安田浩一)는 “법 시행 이후에도 헤이트스피치는 방임 상태다. 실효성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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