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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김진우의 도쿄 리포트

일본발 '가짜뉴스'의 위험한 도박

 요즘처럼 일본 신문이나 TV를 보는 게 심란했던 적이 없다. 일본의 경제 보복조치를 두둔하기 위해 한국에 대한 억측과 중상, 불만과 조롱이 넘치는 내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북 정책이나 ‘촛불혁명’ 등을 두고 일본의 ‘한국 깎아내리기’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도가 지나치다.
 한국의 전략물자 수출관리가 의구심이 간다는 억지뉴스가 대표적이다. 일본은 보복조치의 이유로 ‘부적절한 사안’을 들면서 확인되지 않는 얘기를 흘리고 북한과의 연관 의혹까지 제기한다.
 일정한 패턴이 있다. 일본 정부·여당 관계자발로 전략물자의 ‘북한 유출설’을 흘린다. 아베 정권과 가까운 신문·TV가 근거 없이 한국의 수출관리가 엉망이라는 보도를 내보낸다. 사린가스나 VX 같은 생화학무기 제조에 전용가능한 물자 유출설도 곁들인다. 정부·여당과 일부 언론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한국을 ‘안보 문제국’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단발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뉴스나 연예 정보 등을 가볍게 다루는 TV ‘와이드쇼’ 프로그램들이 이런 내용을 반복해서 다룬다. VX가 북한이 김정남(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을 암살할 때 사용됐다고 설명하면서 사건 당시의 자극적인 화면을 내보낸다. 소위 ‘전문가’라는 이들도 등장해 이번 조치를 정당화한다. 생각해볼 내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것은 불신과 냉소다.
 이번 조치가 “안보상 우려에 따른 무역관리의 재검토”라는 일본 정부 주장을 답습한다. 일본은 냉정하게 이야기하는데 한국은 왜 감정적으로 반응하냐는 것이다. 한국의 수출관리 문제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제대로 수출관리를 하고 나서나 국제사회에 호소하라”고 비아냥댄다. 한국에서 일본 맥주가 인기가 많으니까 맥주 수출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실소만 나온다. 그야말로 ‘아무 말 대잔치’다.
 지난 12일 한·일 당국 간 첫 실무회의에서 일본 측은 ‘부적절한 사례’가 북한 밀반출은 아니라고 한 발 물러섰다. 그야말로 ‘치고 빠지기’ 식이다. 이미 소기의 목표는 달성했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의 안보 문제를 건드려 ‘코리아 리스크’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이런 억지주장은 ‘신문·방송 → 와이드쇼 → 주간지 등 잡지’라는 순서를 따라 확대되면서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미 인터넷 기사에 집중하는 일부 보수 매체와 우익 댓글러들의 합작으로 ‘한국 때리기’ 기사는 야후재팬 같은 인터넷포털 뉴스의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정부의 이번 조치가 ‘타당하다’는 응답이 50%를 넘었다. 한국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는 여론에 불신과 혐오의 연료를 대고 불을 붙이면서 ‘한국 때리기’의 구조를 짠 게 누구인지 곱씹어봐야지만, 이런 사회 분위기에 있는 일본과 마주해야 하는 것도 현실이다.
 그런데 이번 전개 과정을 보면 “한국을 손봐줘야 한다”는 것을 빼곤 무슨 명분과 실익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번 조치가 일본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일본 기업에도 피해가 되돌아오는 “극약 같은 조치”라는 지적은 이미 수 차례 나왔다. 일본의 한 전문가는 “한국이 두 손을 들 거라고 보는 건 판단 미스”라고 했다. 오히려 한국 여론을 강경하게 만들어 정부의 운신 폭을 좁힐 수 있다. 일본 측이 20년 전 외환위기 때 일본에 손을 벌리던 한국을 상정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서 “한국을 괴롭히고, 괴롭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목적”이라는 냉소도 나온다.
 그게 아니라면 일본은 무얼 노리는 걸까. “한국에 일본의 불신을 명확하게 전하는 것”으로 보기에는 너무 나갔다. 일본을 추월할 한국의 산업성장을 막고, 나아가 동북아 질서에서 한국을 제끼고 주도권을 유지하겠다는 걸까. 자꾸 기어오르는 한국을 밟아주고 쥐락펴락하겠다는 걸까. 이런 생각이 맞다면 일본은 위험한 도박에 손을 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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