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한국에 비해 ‘사건·사고’나 ‘격변’이 많지 않은 나라라고들 말한다. 사회가 안정돼 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반면 한 일본 시민운동가는 변화의 열망이 시들한 일본 사회를 한국과 비교하면서 한숨 쉬기도 했다.
이런 일본에서 일왕 교체로 인한 ‘개원(改元·연호가 바뀜)’은 수십 년 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사건’임에 틀림없다.(앞선 개원은 30년 전인 1989년 1월에 있었다.) 지난 4월1일 새 연호 ‘레이와(令和)’ 발표부터 4월30일 아키히토 일왕 퇴위, 5월1일 나루히토 일왕 즉위, 4일 일반 국민 참하(參賀·궁에 들어가 축하함)까지 눈길을 끌어모으는 이벤트들이 줄줄이 있었다.
TV에는 “좋은 시대가 오면 좋겠다”는 식의 시민 인터뷰가 반복해서 나왔고, ‘새 시대’라는 단어가 흔하게 사용됐다. 전·후임 일왕의 일대기, 일왕가 역사 등 왕실 관련 보도도 쏟아졌다.
공영방송 NHK가 아키히토 전 일왕이 참배한 이세신궁을 소개하면서 “왕실 선조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를 모시는 곳”이라고 보도한 것은 기억해둘 만하다. 신화와 역사를 섞어 일왕을 신격화한 보도 사례였다.
개원 휴일이 포함된 사상 최장의 ‘골든 위크(4월27~5월6일)’가 끝났지만, 들뜬 분위기는 아직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70대 여성은 “연호가 바뀐다고 내 생활이 바뀌는 건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렇다. 연호가 바뀌었을 뿐이다. 연호가 바뀌었다고 ‘새 시대’가 오는 것도 아니다. 2019년이 2020년이 된다고 ‘새 시대’가 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되길 바라거나, 그렇게 여기도록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을 뿐이다.
개원 열기의 이면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본 언론들은 고전에서 유래한 새 연호 결정에 아베 총리의 의향이 강하게 반영됐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1989년 ‘헤이세이(平成)’ 연호 발표 때와 달리 총리가 직접 마이크를 잡고 ‘새 시대, 새 일본’을 강조한 것은 정치적 이용에 다름 아니다.
정치학자 시라이 사토시(白井聰)는 최근 아사히신문에 “연호 발표부터 개원까지 전개된 것은 이 나라의 폐색감(꽉 막힌 느낌)을 속이기 위한 정치쇼”라고 말했다. 과거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미디어를 이용한 ‘극장형 정치’ 수법이 탁월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정치적 제자인 아베 총리도 못지 않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잡아두는 데는 일본 왕실만한 무대장치는 없다.
개원 열기와 함께 아베 정권의 발목을 잡던 통계부정 문제는 쏙 들어갔다. 모리토모·가케학원 스캔들 등 아베 정권의 각종 의혹들이 뚜렷한 진상 규명 없이 덮인 것과 마찬가지 패턴이다.
공교롭게도 개원과 함께 아베 총리는 ‘전제조건 없는 북·일 정상회담’을 공언하고 나섰다. 지난해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던 모습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실제 교섭이 진행되고 있다기보다 북한과의 대화 국면에서 일본만 빠져있다는 비판을 의식해 ‘뭔가 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정치쇼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개원에 이어 국민들의 눈과 귀를 잡아끄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이런 정치쇼를 계속 연출하는 게 장수 정권의 비결일 지도 모르겠다.
아마 아베 정권은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감바로(힘내자)” 분위기를 끌어올릴 것이다. 하지만 정치쇼에 국가와 시민사회의 근간들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들은 새겨들을 만하다. 극장형 정치는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진지한 토론을 사라지게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11일자 사설에서 “(아베 총리가) 정중한 설명도 없이 태도를 뒤집는 것은 지금까지도 봐온 광경”이라면서 “설명 없는 방침 전환은 위험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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