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내달 1일 새 연호(年號) 발표와 30일 일왕 퇴위를 앞두고 ‘개원(改元·연호가 바뀜)’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현 일왕의 연호인 ‘헤이세이(平成)’를 기념하는 상품이나 전시회가 잇따르는 것은 물론, 연호가 바뀌는 것을 빙자한 사기 수법까지 등장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선 ‘헤이세이 마지막 세일’, ‘헤이세이 장터’처럼 31년으로 막을 내리는 헤이세이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부각시키는 행사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펼쳐지고 있다. 헤이세이와 관련된 상품이나 장소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24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1989년 1월 당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관방장관이 현 연호를 발표하면서 들어보였던 ‘헤이세이’ 글자를 소장하고 있는 도쿄 국립공문서관에선 이 글자를 복사한 A4 크기의 클리어파일(300엔)이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다. 지난해 3월 판매를 개시한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현재까지 2만5000개가 팔렸다.
현 연호와 같은 한자 이름을 가진 기후(岐阜)현 세키(關)시 ‘헤나리(平成)’ 지구와 구마모토(熊本)현 JR 헤이세이역에는 헤이세이 시대를 추억하려는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다.
여행업계나 유통업계 등에서도 ‘개원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닛폰(日本)여행은 개원에 맞춰 오사카(大阪)와 규슈(九州)를 왕복하는 여행상품을 이달말 내놓는다. 4월30일 가는 편은 ‘헤이세이’, 5월1일 돌아오는 편은 새 연호를 각각 기재한 기념 승차권을 제공한다. 새 연호 첫날인 5월1일 크루즈선으로 도쿄만 일출을 둘러보는 여행상품도 판매되고 있다. 프린스호텔도 전국 7개 지점에서 4월30일 자정에 진행하는 웨딩상품을 내놓았다.
일본에선 연호가 바뀌는 것을 한 시대가 마무리되고 새 시대가 시작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이번에는 히로히토(裕仁) 일왕 서거에 따라 자숙 분위기가 강했던 1989년 때와는 달리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생전 튀위하고 새 일왕이 즉위하기 때문에 축하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기대 반 걱정 반’인 곳들도 적지 않다. 관공서나 우체국, 절, 신사 등이다. 새 연호가 시작되는 것에 맞춰 혼인신고서를 제출하거나 새 연호가 찍힌 소인(消印) 등을 원하는 이들이 몰려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새 연호 첫날인 5월1일은 결혼·이사 등에 좋은 날로 여기는 ‘다이안’(大安)이어서 평소보다 많은 혼인신고서가 제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일본 최대 연휴인 ‘골든위크’가 4월27일부터 최장 열흘 이어지는 데도 일부 지자체는 야간 창구 인력을 보강하거나 5월1일 임시 근무를 결정했다.
우체국의 경우도 쇼와(昭和) 마지막날인 1989년(쇼와 64년) 1월7일의 ‘64·1·7’과 다음날인 헤이세이 첫 날 ‘1·1·8’의 소인을 받으려고 장사진을 이뤘던 전례가 있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서력(西曆) 대신 연호로 날짜를 기입하는 절이나 신사의 경우도 ‘슈인(朱印·도장)’을 받으려는 참배객이 평소보다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연호가 바뀌는 것을 이용한 사기 수법도 최근 잇따르고 있다. 관공서나 은행 직원을 사칭해 “연호가 바뀌기 때문에 현금카드를 바꿔야 한다”면서 고령자들로부터 현금카드와 비밀번호를 받아간 뒤 현금을 빼가는 수법이 수도권에서 잇달아 발각되고 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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