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은 얼마나 있어요?”
‘노인대국’ 일본이 고령자에게 걸려오는 사기 전화로 고심하고 있다. 아들이나 손자 등으로 가장한 채 긴급하게 거액을 요구하는 ‘오레오레(나야 나) 사기’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아포덴’과 같이 더 진화한 수법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포덴’은 ‘약속·예약’을 뜻하는 ‘어포인트먼트(Appointment·아포)’와 ‘전화(덴와)’의 앞 글자를 합한 말로, 전화를 걸어 금융상태 등을 확인한 뒤 고령자가 사는 집에 침입하는 것이다.
4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오후 2시쯤 도쿄 고토(江東)구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80세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여성은 테이프 등으로 손발이 묶인 채였으며,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집 안은 선반이나 서랍을 뒤진 흔적이 있었다. 앞서 사건 당일인 오전 11시쯤 검은 옷에 두건과 마스크를 착용한 인물 3명이 이 집을 출입하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 카메라에 잡혔다.
경찰은 이번 사건이 범행 대상을 찾아 집에 있는 현금의 액수를 확인하는 ‘아포덴’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숨진 여성은 지난달 중순 “돈이 있나”라는 의심스러운 전화를 받았다고 지인에게 얘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도쿄 시부야(澁谷)구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지난 1월11일 새벽 시부야구 하쓰다이(初台)의 주택에 3인조가 침입해 90대 남편과 80대 아내를 묶은 후 현금 약 2000만엔과 보석을 빼앗아 달아났다. 2월1일 아침에는 같은 구 사사즈카(笹塚)의 주택에도 3인조가 침입, 노부부를 묶은 뒤 현금 약 400만엔을 빼앗아 도주했다. 두 사건 모두 사전에 피해자의 집에 가족을 가장해 “병 때문에 돈이 필요하다” 등 의심스러운 전화가 걸려온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에선 오레오레 사기 등 특수사기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2018년 연간 피해액은 356억엔(약 3576억원)으로 하루 1억엔 가까이 뜯기는 셈이다.
특히 ‘아포덴’은 최근 오레오레 사기 등의 예비조사 수법으로 눈에 띄고 있다고 니혼게이지아신문은 전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도쿄에선 2018년 한 해 동안 약 3만4000건이 확인됐다. 전년에 비해 약 30% 증가한 수치다. 아들 등을 가장해 “회사 돈을 유용했다. 예금이 얼마나 있나”라고 전화로 물은 뒤 아들의 지인이라면서 ‘실행역’이 찾아오는 수법이 많다. 앞서 하쓰다이 강도 사건 현장 인근 주택들에도 지난해말부터 ‘아포덴’으로 의심되는 전화가 잇따랐다.
경찰 간부는 “사기보다 더 난폭한 강도로 나오는 이들이 나타나 희생자까지 생겼다”면서 “예금이나 자택 현금을 물어보는 의심스러운 전화가 걸려와도 절대 답하지 말고 경찰에 통보해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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