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분의 1m의 ‘자동차’가 1000만분의 1m 길이의 꾸불꾸불한 경주 코스를 달린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오는 28~29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 사상 최초로 열리는 ‘국제 나노카(nano car) 레이스’다.
나노카 레이스는 물질의 기초가 되는 분자를 조합해 만든 ‘분자기계’가 속도를 겨루는 경기다. 금(金) 결정체 표면에 자연적으로 생긴 지그재그 모양의 홈을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로 승자를 가린다. 이들이 달릴 주행코스의 폭은 1000만분의 1m, 온도는 절대온도(K) 0도에 가까운 영하 268도다. 경기 중에는 진공 상태가 유지된다. 출전하는 자동차는 이 극한 조건의 코스를 38시간 이내에 주파해야 한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산하 구조물리연구개발센터(CEMES)의 의뢰를 받아 사이엔타오미크론이라는 회사가 경기장을 만들었다.
1나노m는 10억분의 1m로, 볼펜으로 그려지는 선 굵기의 50만분의 1, 머리카락의 3만분의 1, DNA분자의 100분의 1에 해당한다. 이렇게 작은 단위에서 분자를 조합해 움직일 수 있는 구조물을 만드는 ‘분자기계’ 분야는 요새 각광 받는 첨단과학 분야다. 지난해 노벨 화학상도 ‘세계에서 가장 작은 기계’를 만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장-피에르 소바주 교수 등 3명에게 돌아갔다. 생명체는 유전정보에 따라 아미노산을 조합해 단백질을 생산하는 ‘자기조립’ 능력을 갖고 있다. 이렇게 자기조립하는 물질을 이용해, 유용한 물질을 조립해내는 분자기계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나노기술은 미래에 컴퓨터, 의학 등 여러 분야에서 응용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분자기계를 조작하는 것은 우주에서 지구에 있는 야구공을 다루는 것과 같은 어려운 작업이다.
이번 대회는 분자기계 연구·개발에 관심을 모으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대회에는 미국, 독일, 프랑스, 스위스, 일본, 오스트리아에서 6개 팀이 참가한다. 아직 코스 길이는 정해지지 않았다. 출전팀들이 모두 모여 시험 ‘운전’을 해본 뒤 합의해 코스 길이를 정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13일 마이니치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물질·재료연구기구(NIMS) 팀이 출전한다. 이 팀이 만든 나노카는 길이가 2.1나노m다. 탄소 원자 50개, 수소 원자 34개, 산소 원자 4개의 88개 원자로 구성돼 있다. 여섯 팀이 내놓은 나노카의 구조는 대개 비슷하다. 자동차처럼 차대(chassis)라 불리는 기본 구조가 있고, 양쪽에 바퀴처럼 돌출된 분자구조물이 있다. 전기자극을 주면 ‘바퀴’가 회전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참가자들은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전기자극을 조절해 나노카를 ‘운전’한다.
물론 사람의 눈으로는 경주를 직접 볼 수 없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가 원자 단위까지 볼 수 있는 ‘주사형 터널 현미경’을 사용해 유튜브 채널 등 온라인으로 경주를 생중계할 예정이다. 진짜 자동차는 아니지만 일본팀은 도요타자동차의 후원을 받았고, 독일 드레스덴공대 출전팀은 폭스바겐의 후원으로 나노카를 개발했다. 일본팀 대표인 나카니시 와카(中西和嘉) NIMS 주임연구원은 “완주 자체가 어려운 경기가 될 것”이라면서도 “이번 대회가 분자기계의 가능성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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