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는 일본 ‘좀비기업’ 떼의 습격을 피할 수 있을까.”
142년 역사를 가진 대표적 가전업체 도시바(東芝)가 위기에 처하자 일본에서 ‘좀비기업’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한국 대기업들이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를 자랑하듯, 일본의 대기업 연명(延命) 정책이 또 작동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해외 언론들은 일본 정부와 금융권이 경영위기에 빠진 ‘도시바 살리기’에 나설지 주시하고 있다. 영국 BBC는 16일(현지시간) “도시바가 ‘죽음의 키스’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투자자들에게 주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일본의 ‘산송장(Walking Dead)’ 기업 명단 맨 위에 이름을 올릴지도 모른다”고 전망했다.
도시바는 원자력발전 부문 자회사인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지난해 최대 1조엔(약 10조5000억원)의 손실을 본 탓에 올 2월과 3월 두 차례 실적 발표를 미뤘다. 지난 11일 회계법인의 ‘감사의견’ 없이 지난해 4~12월 실적을 발표했지만, 영업적자 5325억엔(약 5조5800억원)에 자본잠식 2256억엔(약 2조3600억원)으로 존속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BBC는 도시바의 향후 시나리오로 제일 먼저 ‘구제금융’을 들었다. 도시바 파산을 막으려고 일본 정부나 금융기관이 돈을 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블룸버그통신도 “서구에선 도시바 같은 상황이면 회사가 파산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일본에선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종신고용제 전통이 강해 구조조정을 꺼리는 일본에선 파산할 상황임에도 정부에 손을 벌리며 연명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 지난해 중국 폭스콘에 인수된 전자업체 샤프가 대표적이다. 일본 정부와 은행권은 일본 경제에서 무시할 수 없는 기업이라며 적자에 허덕이던 샤프에 퍼주기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샤프는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매각됐다. 에어백 제조사인 다카다를 비롯해 텝코, 재팬디스플레이, 가네보, 다이에 등도 ‘좀비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일본 기업들 가운데 상장 폐지된 경우는 한 건도 없었고, 파산율도 8년 연속 하락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일본은 파산건수가 8812건이었지만, 미국은 2만4636건이었다.
하지만 경영에 실패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대기업들을 국가가 나서서 구제해주는 것은 고통을 연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BBC는 “일본에는 수천개의 좀비기업들이 있으며, 이는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10년’을 겪어야 했던 이유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연구에 따르면 일본은 혁신과 창업 비율이 다른 회원국들에 비해 매우 낮다. 게다가 ‘빅 보이(Big Boy)’의 손을 들어주는 대마불사 문화는 공평한 ‘경기의 룰’을 부정해 혁신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아베노믹스의 ‘세 개의 화살’ 중 세 번째로 꼽은 것이 구조개혁이었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다.
블룸버그는 “좀비기업 문제를 끝내지 않으면 일본은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아내기 힘들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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