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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람들

“일본, 당당하게 인종차별 할 수 있는 사회 되고 있어”…차별 소송 낸 김류스케 변호사

 “과거 인종 차별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나쁘다는 인식이 있어 익명으로 했지만, 이제는 실명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비난받지 않고 ‘일본을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 당당하게 인종 차별과 헤이트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를 해도 되는 사회가 되고 있어요.”
 지난 17일 도쿄(東京) 다이토(台東)구 사무실에서 만난 김류스케(金龍介·53) 변호사는 최근 일본 사회의 분위기에 대해 “우려스럽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지난 12일 또다른 재일동포 변호사와 함께 민족을 이유로 징계를 청구한 것은 인종차별이라고 징계청구서를 보낸 이들 일부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직접 소송에 나선 것도 “(피해) 당사자인 재일코리안이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2017년 11~12월 950여명으로부터 도쿄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18명에 대한 징계청구서가 배달됐다. 도쿄변호사회가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요구하는 회장 명의의 성명을 낸 것에 반발한 것이었다.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 지급에 찬동하는 것을 “확신적 범죄행위”, “이적행위”, “매국행위” 등으로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징계청구 대상자 18명 중 10명은 당시 성명을 냈던 도쿄변호사회 회장 등 임원들이었지만, 나머지 8명은 재일동포 변호사였다. 김 변호사는 “업무 관련성이 아니라 단지 변호사회 명단에서  ‘한 글자로 된 성씨’를 보고 재일코리안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일본에선 지난해 헤이트스피치 반대 운동을 하는 변호사들에 대한 징계청구서가 각 변호사지회로 대량 배달됐다. 이에 대해 일부 변호사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재일동포 변호사들이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징계청구서가 쇄도한 배경에는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반대하고 인종차별을 선동해온 한 우익 블로그의 존재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김 변호사는 “징계청구서가 이름과 주소만 빼곤 내용이 거의 똑같다”면서 “블로그에 선동당해 한 것 같다”고 했다.
 김 변호사가 우려하는 것은 징계청구서를 보낸 사람들이 극우 성향의 네티즌인 ‘넷우익’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재일조선인이 어떻고 하면서 인터넷상에서 헤이트스피치를 하는 사람은 지금까지도 있었지만, 이름과 주소를 쓰고 도장까지 찍은 사람이 950명이나 있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도 있고, 가정도 있는 사람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이라면서  “결국 재일코리안을 배제하려는 감정이 뿌리 깊다보니 선동에 넘어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일 3세로서 25년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 변호사가 ‘원고’로 소송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간과하기 힘든 문제였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당사자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다. “역사를 보더라도 당사자가 선두에 서지 않으면 일본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면서 “재일코리안이 선두에 서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일본인들이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태도도 짚었다. 
 “물론 이런 짓을 하는 일본인은 극히 적습니다. 북한이 심하다느니, 재일코리안이 나쁘다느니 하는 사람들인데, 이들을 ‘바보같다’고 하는 한편, ‘그런 기분도 이해한다’는 식으로 얘기합니다. 그래선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전체적으로 봐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바보라서 그런 걸까요. 문제는 일본이 그런 걸 허용하는 사회가 됐다는 겁니다.”
 김 변호사는 재일동포 변호사들로 구성된 재일코리안변호사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외국인 권리 옹호 활동을 다수 해왔다. 얼마 전에는 도쿄 지역 민방인 도쿄 MX TV의 <뉴스 여자> 프로그램의 재일동포 신숙옥씨에 대한 명예훼손 건을 맡았다. <뉴스 여자>는 지난해 1월 방송에서 오키나와(沖繩) 기지건설에 반대하는 이들을 “테러리스트같다”거나 “일당을 받고 고용됐다”고 주장했다. 반대운동을 하는 신씨에 대해선 ‘친북파 한국인’이라면서 시위대의 배후로 지목했다. 이에 대해 신씨는 일본 방송윤리·프로그램 향상기구(BPO)에 인권침해 심의를 신청, 지난 3월 인권침해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해당 프로그램 제작사의 모회사인 화장품업체 DHC의 요시다 요시아키(吉田嘉名) 회장은 “BPO 위원들 대부분이 반일·좌익으로, 오키나와 문제에 관여하고 있는 재일코리안을 중심으로 한 활동가들을 편드는 것은 동포애”라며 “각 분야에 반일사상을 가진 재일귀화인이 너무 많아지고 있다는 게 걱정된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인터넷에 떠도는 유언비어가 바로 TV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것, 인터넷에서만 하던 거짓말이 실제 사회에서 나오는 것. 그게 지금의 일본 사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