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미 외교정책, 강경서 온건으로…현실 파악했거나 ‘전략’이거나
“우리는 캐나다와 아주 뛰어난 무역 관계를 맺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는 “캐나다와의 무역관계는 남쪽 국경에 있는 나라(멕시코)보다는 훨씬 덜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트럼프가 캐나다의 불안감을 덜어줬다”고 평가했다.
며칠 새 트럼프는 숨 가쁜 외교 일정을 소화했다. 지난 9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첫 통화를 했고 10일과 11일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만났다. 이어 트뤼도와 회동했다. 그 사이 트럼프의 외교 정책은 ‘냉탕’에서 ‘온탕’으로 바뀌었다. 대선 후보나 당선자 시절 보여준 강경 기조에서 온건론으로 돌아선 것같이 보인다. 취임 3주를 보내며 외교·안보의 현실을 깨달은 것이라는 분석이 있지만, ‘으르고 달래기’ 전략일 따름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 부드러워진 트럼프?
트럼프는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까지 미국의 전통 외교 노선에서 벗어난 행보들을 보여 세계의 우려를 자아냈다. 당선 직후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전화 통화를 했고 ‘하나의 중국’ 원칙도 폐기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며 중동정책을 뿌리째 흔들려 했다. 이란과의 핵 협정을 파기할 수 있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외교 정책이 구체화하면서 점점 더 기존 정책들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시 주석과의 첫 통화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할 것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에는 “정착촌 건설을 중단하라”고 했고, 나토를 강력 지지한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측근들은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에게 핵 협정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제야 현실 인식한 것”
마틴 인디크 브루킹스연구소 부소장은 10일 뉴욕타임스에 “모든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는 선거 운동 때와 관점이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말했다. 신문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반전(反戰) 후보’였지만, 무인항공기 폭격이나 비밀 테러 작전을 열렬히 옹호했던 사례를 들었다.
북한 미사일 대응은 트럼프가 ‘현실 세계’의 위협에 직면해 대중적인 레토릭을 버린 생생한 사례다. 트럼프는 미국을 찾은 아베 총리와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하고 “미국은 우리의 중요한 동맹인 일본을 100% 지지한다”고 말했다. 연내 일본 방문을 약속해주고 무역적자 문제는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 후보 시절에는 “미국이 공격당하는 동안 일본인은 집에 앉아 소니 TV나 본다”고 했다.
국방·외교팀이 본격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트럼프의 돌출행태가 줄어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2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자리를 잡으면서 트럼프의 진화를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군인 출신, 사업가 출신인 매티스와 틸러슨이 미국의 이익을 따지고 트럼프를 현실로 끌어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 ‘윽박지르고 달래기’ 전략
반면 상대를 윽박지른 뒤 달래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전략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의 장기인 부동산 거래처럼 자신의 요구를 최대한 관철시키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마이니치신문은 미·일동맹에서 일본의 분담 확대를 이끌어낸 미·일 정상회담을 두고 12일 “양보하는 것처럼 보여 실리를 얻는 교묘한 ‘트럼프류(流)’가 엿보였다”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가 ‘온건해졌다’고 썼지만 이런 변화는 다시 뒤집힐 수 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국가안보위원회(NSC)에서 일한 피터 피버는 “트럼프는 다른 정부들과 달리 심층적인 정책 검토와 내부 토론을 하지 않고 취임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주변의 극우파와 현실주의자들의 역학관계에 따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15일에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만난다. 16~17일에는 독일 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 회의를 통해 국제무대에 데뷔할 틸러슨의 행보도 트럼프 외교정책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진우 기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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