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악수하면서 손을 쓰다듬고 있다. 이 악수는 19초 동안 어색하게 이어졌다. CNN은 이날 악수를 ‘세계 정상 간의 어색한 악수’ 사례로 꼽았다. 워싱턴|AFP연합뉴스
10일(현지시간) 열린 미·일 정상회담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벌일 ‘무역·환율전쟁’의 예고편이었다. 트럼프의 ‘공정무역’ 압박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일부 받아들인 모양새인 데다 대규모 투자 선물 보따리까지 내놓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더 나아가 중국의 ‘환율조작’ 문제를 끄집어내면서 ‘공평한 운동장’을 강조했다. 이를 두고 트럼프발(發) 무역·환율전쟁에 발동을 건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1985년 달러 가치를 인하했을 때처럼 중국을 주 타깃으로 한 ‘제2의 플라자합의’를 노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제기된다.
두 정상은 회담에서 자유·공정무역을 위한 규칙에 기초해 경제관계를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트럼프는 공동기자회견에서 “양국 모두에 혜택을 주는, 자유롭고 공정하며 상호적인 무역관계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일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통상 압박을 강화할 뜻을 내비친 것이다. 양측은 또 양자 무역체제 구축을 위한 대화 채널도 만들기로 했다.
이번 회담에선 일본의 자동차산업이나 대미 무역흑자, 환율정책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트럼프는 줄곧 일본과의 자동차 무역이 불공평하다고 비판해왔다. 지난해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는 689억 달러(약 78조8400억 원)로 중국에 이은 2위다. 이 가운데 526억달러(76%)가 자동차와 관련 부품이다. 아베는 회견에서 “자동차회사를 비롯한 일본 기업들이 미국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7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내 일자리 70만개를 창출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의 으름장에 먼저 알아서 선물을 안긴 것이다.
트럼프는 중국의 ‘환율조작’도 거론했다. “중국의 통화 평가절하에 대해 내가 그동안 계속 불평을 해왔는데 우리는 결국 공평한 운동장에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과의 불균형 무역을 바로잡기 위해 조치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트럼프는 그간 대중국 무역적자를 문제 삼으면서 중국을 환율조작국을 지정하고, 중국산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두 번째 무역적자국인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트럼프가 예고하고 있는 무역·환율전쟁의 가늠자로 본다. 트럼프는 중국, 일본, 독일이 통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춰 부당한 이득을 보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중국과 일본이 시장을 조작했고 우리는 얼간이처럼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공정한 무역’ ‘공평한 운동장’을 강조했다. 중국을 필두로 한 대미 무역흑자국과의 무역·환율전쟁을 경고한 것이다.
무역적자의 원인을 미국 상품의 경쟁력이 아니라 외국의 저임금이나 환율조작에서 찾는 이런 행태는 30여년 전과 판박이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정부는 경상수지와 재정의 ‘쌍둥이 적자’에 신음했고, 그 원인을 일본에 돌렸다. 결국 일본은 1985년 달러 강세를 시정키로 한 플라자합의를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였다. 이 결정은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으로 가는 첫 단계였다는 분석이 많다.
트럼프발 무역·환율전쟁의 주 타깃은 중국이다. 지난해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는 3470억달러로, 전체 무역적자(5023억달러)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했다. 그러나 중국을 겨냥한 ‘제2의 플라자합의’가 실현될지는 의문이다. 현재의 통화시장은 30여년전보다 훨씬 크다. 지정학적인 상황도 다르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플라자합의는 전후 자유진영 주축들의 ‘내부합의’였지만, 지금 아시아에서 미국의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중국과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이른 시일 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등 초강경 조치를 취할지, 물밑 타협을 하려 할 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음달 17~18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용어설명-플라자합의란
잇단 석유파동 뒤 미국이 고금리 정책으로 전환하면서 달러 가치가 높아지면서 미국 무역적자가 급증했다. 그러자 1985년 9월22일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중앙은행 총재가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 모여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를 절상한다는 합의를 내놨다. 그 결과 엔화가 급격히 절상됐고 일본은 장기불황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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