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의 멜트다운(meltdown·녹아내림).”
140년 역사를 가진 일본의 대표적인 가전업체 도시바(東芝)가 와해 위기에 처하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렇게 표현했다. 경영난을 타개하겠다며 원전사업에 주력한 것이 결국 치명타가 됐다. 현재까지 확인된 원전사업 손실액만 7조원이 넘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시장이 위축된 게 도시바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전문가들은 ‘도시바 위기’가 글로벌 원전 산업에도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장 도시바가 수주한 영국 컴브리아 원전사업이 안갯속에 빠졌다. 영국에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원전 계획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도시바 쇼크’ 일파만파
15일 도쿄 증시에서 도시바의 주가는 9% 떨어졌다. 전날 8% 떨어진 데 이어 이틀 연속 매도 물량이 쏟아지며 급락세를 이어간 것이다. 도시바는 전날 정오 예정됐던 2016년 4~12월 결산 발표를 연기, 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 도시바는 “미국 원전회사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을 수 있어, 조사를 하기 위해 발표를 한 달 미루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시가 시게노리(志賀重範) 회장이 사임했다. 쓰나카와 사토시(綱川智)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주주들에게 불편을 끼쳐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도시바의 2016회계연도 1~3분기 적자 규모는 4999억엔으로 예상됐다. 아사히신문은 오는 3월 말 2016회계연도 결산 때 1500억엔의 채무초과(자본잠식)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도시바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금융비용이 올라가 총체적 난국을 맞는다. 도시바는 자구책 마련에 돌입했다. 우선 알짜사업인 반도체의 지분을 50%까지 팔기로 했다. 15일엔 금융기관 설명회를 열고 융자를 지속해줄 것을 읍소했다.
■ 시대를 못 읽은 원전 ‘올인’
‘도시바 쇼크’의 주범은 미국 내 자회사인 웨스팅하우스였다. 도시바는 미국의 대표적인 원전회사인 웨스팅하우스를 2006년 6100억엔에 인수했다. 당시만 해도 “원전 분야에서 세계를 리드하게 됐다”고 의기양양해 했고, 신흥국 원전 수요가 늘어 ‘핵발전 르네상스’가 열릴 것이라고도 했다.
그릇된 기대였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안전기준이 강화되면서 곳곳에서 공사가 지연되고 지출이 늘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 조지아와 사우스캐롤라이나 원전사업에서 당초 8800만달러 정도로 예상됐던 영업비용이 자재비와 인건비가 늘며 눈덩이처럼 불어났다”고 보도했다. 2015년 웨스팅하우스가 원전건설회사 스톤앤드웹스터를 인수하는 과정에서도 큰 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로도 망가진 도시바로선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그해 도시바는 대규모 회계 부정을 들켜 전·현직 최고경영자 3명이 모두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이후 대대적으로 경영 쇄신에 나섰지만, 사태를 호전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난해 백색가전 부문을 중국업체에, 의료기기 부분을 캐논에 넘겼다. 이제 나머지 알짜배기인 반도체 사업까지 팔아야 할 판이다. 라쿠텐증권의 구보타 마사유키 수석전략가는 월스트리트저널에 “문제 있는 부문은 놔두고 가장 수익성 높은 부분을 판다면 도시바의 미래에 희망을 걸 수 없다”고 말했다.
■ 일본 대표기업의 몰락
도시바의 역사는 1875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890년 토머스 에디슨의 지도를 받아 일본에서 백열등을 선보였고, 1930년대 초 일본 최초로 냉장고와 세탁기, 진공청소기 등을 개발했다. 이후 반도체, 철도, 중공업 분야로 사업을 넓혔지만 가전 부문에서 한국과 중국업체에 밀리면서 위기에 직면했다. 사임한 시게노리 회장은 원전사업을 오랜 기간 이끌었던 인물이다. 쓰나카와 사장은 웨스팅하우스 인수에 대해 “당시 결정이 옳았다고 말하긴 어렵다”고 했다.
2012년 그린피스가 세계 주요 기업들의 사업 부문을 분석해 친환경 등급을 매겼을 때 도시바는 맨 밑에서 2번째 등급을 맞았다. 설비업체들이 친환경 사업 부문으로 옮겨갈 때 도시바는 트렌드에 맞지 않는 원전 부문에 집중했다. 그것이 결국 패착으로 돌아온 셈이다. 도시바는 신규 원전 건설을 중지하고,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낮은 원전 서비스와 원자로 설계 등에 집중할 계획이다. 웨스팅하우스를 매각할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누가 사길 원하겠나”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김진우 기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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