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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람들

일본에서 기억되는 ‘제주 4·3사건’…고이삼 ‘4·3을 생각하는 모임’ 사무국장

 “젊은이들도 행사에 오고, 젊은 학자들도 옵니다. 일본인들도 말하기 시작했고요. 4·3이 동아시아에서 더욱 평가받을 날이 올 겁니다.”
 제주 4·3 사건은 제주도 안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일본에서도 제주 출신 재일코리안들을 중심으로 4·3 사건을 기억·추도해왔다.
 3일 70주년을 맞는 4·3 사건을 일본에서 추도하는 행사가 처음 열린 건 30년 전인 1988년이다. 1985년 창립된 ‘탐라연구회’가 조촐한 제사를 지내던 게 1987년 ‘제주 4·3 사건을 생각하는 모임(4·3 모임)’이 생기면서 추도 행사로 발전했다. 소설가 김석범을 비롯한 제주 출신 재일코리안 1·2세들이 주도했다. ‘4·3 모임’ 도쿄 사무국장인 고이삼(高二三) 신간사(新幹社) 대표(66)는 이 모임의 ‘막내’였다. 
 “원래는 서울, 제주, 도쿄, 오사카에서 동시에 4·3 행사를 열 계획이었지만, 서울과 도쿄에서만 열렸어요. 도쿄 행사엔 300석인 강연장을 사람들이 가득 메워 모두 바닥에 앉아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4·3을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고, 듣고 싶어도 듣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관심이 높았지요.”
 지난달 30일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사무실에서 만난 고 대표에게선 모국에서 ‘금기시’되던 4·3을 재일동포들이 먼저 말했다는 자부심이 엿보였다.
 “이대로 있다간 4·3을 아는 사람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버릴 것이라고 모두들 걱정했습니다. 1988년은 4·3이 부활하느냐, 죽느냐는 갈림길이었요. 이후 1989년 제주 4·3연구소가 생기고 제주대 학생들이 집회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첫 행사 이후 몇 년 간 침체기를 겪기도 했다. 재일동포들이 행사에 참가했을 경우 입국관리법상 불이익을 당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 지금은 정부 차원의 조사와 보상 조치 등이 진행되고 있으니 고 대표는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고 했다. 다만 “한국민들에게 4·3 사건의 진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이제 도쿄 추모 행사는 매년 500명 정도가 모일 정도로 안정적인 행사로 발전했다. 도쿄 행사에 앞서 제주에서 열리는 4·3 행사에 재일동포·일본인 참가단을 이끌고 가는 것도 고 대표가 매년 하는 일이다.
 올해 행사에는 보다 많은 사람들의 참가를 이끌어내기 위해 색다른 행사를 준비했다. 오는 21일 도쿄 호쿠토피아에서 열리는 4·3 사건 70주년 기념 행사에는 소설가 김석범과 문경수 리쓰메이칸대 교수의 대담과 함께 ‘잠들지 않는 남도’를 부른 가수 안치환 공연을 준비했다.  고 대표는 “4·3 사건은 한국 민주주의의 바로미터라고 생각한다”면서 “4·3이 한국 내에서 자유롭게 말해지게 될 때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달성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판사 신간사도 ‘4·3 모임’과 마찬가지로 올해 31년째를 맞았다. 지금까지 200권 가까운 책을 냈다. 재일코리안 관련 책들이 절반을 넘고, 제주 4·3사건 관련 책도 50권 가까이 된다. 지난해에는 설립 30주년을 맞아 <구일본군 조선반도 출신군인·군속 사망자명부>를 냈다. 1400쪽에, 3만엔이나 하는 책이지만, 자신의 출판사밖에 낼 곳이 없다고 판단했다. 고 대표는 이런 노고를 인정받아 제주 4·3 평화재단이 올해 처음 제정한 4·3 특별공로상 국외활동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3년 전 생활을 위해 운영하던 한식당을 접었다는 고 대표. 그는 “너무 힘들어서 출판사를 그만두려고 할 때마다 아내가 ‘식당은 당신이 없어도 누군가 하지만 출판사는 당신이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껏 계속 하는 것”이라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