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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김진우의 도쿄 리포트

다사(多死)사회 일본, 고인의 추억도, 온기도 디지털로

3D 프린터로 제작한 '이닌교'(고인의 피규어)

 “언제라도 주변에 있는 것 같아요.”
 일본 아이치(愛知)현 도요타(豊田)시에 거주하는 가와이 요네코(河合米子·80)는 2년 전 50년 가까이 함께 한 남편을 잃었다. 슬픔을 달래준 것이 딸에게 선물받은 ‘이닌교(遺人形·고인의 피규어)’. 남편의 사진을 기초로 3D 프린터로 제작한 높이 30㎝의 석고상으로, 남편이 애용한 모자와 머플러를 정교하게 재현하고 있다. 요네코는 “모두들 (남편을) 쏙 닮았다고 한다”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말했다.
 일본에서 세상을 떠난 가족의 온기나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 디지털 기술이 적극 활용되고 있다. 3D 프린터나 클라우드 기술을 구사해 고인의 생전 모습을 사실적인 조각상으로 만들거나 고인의 육성을 전하는 사업들이 확산되고 있다. 초고령사회를 맞아 사망자가 급격히 증가하는 ‘다사(多死)화’에 직면하고 있는 일본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수단도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요네코가 선물로 받은 남편의 이닌교는 오사카(大阪)에 있는 한 회사가 3D 프린터로 제작한 것이다. 가격은 20만엔으로, 이 회사는 지난 3년 간 약 350개의 주문을 받았다. 실제와 가까운 고인의 모습을 거실이나 침실 등 가까이 둘 수 있다는 점을 홍보하고 있다. 일본에선 집에 불단을 두고 고인을 기리는 풍습이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고인의 유언을 유족에게 보내주는 서비스도 개시를 앞두고 있다. 이 서비스는 고인의 생전 영상을 클라우드에 보관해 자녀들의 생일 등 지정된 날짜에 보내준다. 올해 안에 월 500엔(약 4800원)으로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과거 망자의 말을 전해준다는 ‘이타코(무녀)’에서 이름을 따 서비스명을 ‘itakoto(이타코토)’로 할 예정이다.
 디지털기술은 슈카츠(終活·임종활동)에서도 역할을 하고 있다. 특정의 장소에 스마트폰을 가져가면 고인이 미리 촬영해둔 동영상이 재생되는 ‘스마보(스마트폰의 스마+묘지(墓)스마트폰묘지)’라는 서비스다. 자식들이 고인과 인연이 있는 장소를 방문했을 때 모바일게임 포켓몬고의 캐릭터를 발견하는 것처럼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해 고인을 재회할 수 있도록 했다.

증강현실(AR) 기술을 통해 특정 장소에 가면 고인의 영상을 보여주는 ‘스마보’ 서비스 홍보 이미지.  

 이러한 새로운 서비스의 확산은 기술 혁신 덕분이다. 고인의 조각상을 특수주문할 경우 수백만엔이 드는 경우도 있지만, 3D 프린터라면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제작할 수 있다. 클라우드의 보급으로 개인이 기록할 수 있는 데이터 용량도 비약적으로 늘었다. 사회상도 변화하고 있다. 불단을 둘 장소에 곤란을 겪거나 묘지의 계승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다만 일본의 공양 관습과 타협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미디어 아티스트 이치하라 에치코는 소프트뱅크의 인간형 로봇 페퍼에 고인의 표정이나 음성을 재현하는 기능을 개발했다. 약 40명분의 데이터를 모아 연내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재현기능 설정은 고인 사후 49일까지로 할 예정이다. 유족들이 고인 사후 49일이 지나면 상을 벗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로봇이 고인처럼 대화하는 기능도 검토했지만, 미리 녹음한 대사나 동작을 재현하는 선에서 멈췄다. 고인에의 과도한 집착으로 연결되지 않도톡 하기 위해서다.
 이 같은 디지털 기술에 대해선 “가짜 느낌이 든다” 등 회의론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연간 사망자수가 2040년 160만명이 예상되는 등 ‘다사사회’에 직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별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보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는 설명했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 의 고다니 미도리 수석연구원은 “데이터를 활용해 고인을 추도하면서 그가 없는 생활에도 조금씩 적응할 수 있도록 디지털 기술이 도와줄 수 있어 좋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