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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김진우의 도쿄 리포트

개관 50주년 맞는 진보초를 밝히는 예술영화의 등불 '이와나미 홀'

 지난 5일 헌책방 거리로 유명한 일본 도쿄 진보초(神保町) 사거리에 자리잡은 이와나미진보초빌딩. 50년이 넘은 건물로 들어가, 비슷한 시간을 견딘 듯한 엘레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인 10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어서 오세요”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왼쪽으로 방향을 꺽자 아담한 ‘명화의 전당’이 낯선 손님을 반긴다. 일본  ‘미니 시어터’(소규모 예술영화 전용관)의 선구자로 불리는 ‘이와나미(岩波) 홀’이다.
 단관에 좌석은 220석. 벽면에는 1974년부터 지금까지 상영된 영화 광고지 245장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평일 낮 시간. 관객은 대부분 중장년층이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이들이 한두 명 눈에 띈다. 영화 광고지를 유심히 살펴보던 한 70대 관객은 “이곳에 몇 번이나 영화를 보러 왔다. 많은 추억들이 있다”고 했다.
 일본 예술영화관의 대표격인 이와나미 홀이 오는 9일로 개관 50주년을 맞는다. 이와나미 홀은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의 숨겨진 영화를 발굴·상영, 일본 미니시어터 붐을 촉발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1968년 이와나미서점의 사장이었던 이와나미 유지로(岩波雄二郞)가 사재를 출연, 다목적홀로 처음 문을 열었다. “좋은 거면 뭘 해도 괜찮다”면서 프랑스에서 영화 제작을 공부했던 처제 다카노 에쓰코(高野悅子)에게 총지배인을 맡겼다. 1974년 다카노가 영화제작자인 가와키타 가시코와 의기투합, 인도의 거장 사트야지트 레이의 <아푸의 세계>를 상영한 것을 시작으로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방향을 잡았다. 두 사람은 명화를 상영하는 운동인 ‘에키프 드 시네마’(영화의 친구)를 전개했다. ‘일본에서는 상영되지 않는 제3 세계 명화를 소개’, ‘서구의 명화라도 대형업체가 받아들일 수 없는 명화 상영’ 등을 목표로 내걸면서 숨겨진 명화의 소개에 주력했다.
 지금까지 55개 나라·지역의 영화 245편을 상영했다. 홍콩 영화 <송가의 세 자매>(한국 상영명 <송가황조>), 안성기 주연의 <잠자는 남자> 등 인기를 끌었던 작품도 적지 않다.
 이와나미 홀의 성공은 예술성이 높은 영화도 ‘비즈니스’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1980년대 일본에서 미니 시어터 붐을 촉발시켰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스크린을 다수 보유한 복합영화관(멀티플렉스)이 보급되고,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영화를 보는 이들이 증가하면서 미니 시어터들은 차례차례 폐관 위기에 몰렸다. 일본영화제작자연맹에 따르면 전국의 영화관 스크린수는 증가하고 있지만, 4개 이하의 스크린을 가진 영화관의 스크린수는 2000년도 1401개에서 2016년 429개로 줄어들었다.
 이런 가운데 이와나미 홀은 ‘마이너리티’와 ‘개성’이라는 가치를 담은 영화를 지지해주는 역할을 계속할 예정이다. 지금도 사원 10명 전원이 작품을 먼저 본 뒤 토론하는 시간을 갖곤 한다.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느냐 없느냐’보다 ‘작품이 좋았다’라는 순수한 감상을 소중히 하고 있는 것이다. 
 개관 50주년 기념 작품으로 지난 3일부터 상영하고 있는 조지아 영화 <꽃이 필 무렵(In Bloom)>도 이런 생각에서 골랐다.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를 무대로  폭력의 무모함과 내전 후의 혼돈, 미래에의 희망 등을 그려낸 작품이다. 차기 상영작은 키르기스스탄 영화다.
 2013년 다카노가 세상을 떠난 뒤 이와나미 유지로의 딸인 리쓰코가 총지배인으로 이와나미 홀을 이끌고 있다. 리쓰코는 “올해도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영화를 준비했다”면서 “어두운 영화관에서 시선을 집중해 찬찬히 본다라는 행위가 새로운 체험이 된다는 것을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