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의 자유기고가 야요이(필명)는 일본 요코하마(橫濱)의 월세 5만5000엔(약 54만원)짜리 원룸에 산다. 11㎡ 정도 크기의 방에는 TV, 냉장고, 세탁기 등 ‘필수’ 가전제품이 없다. 컬러박스를 탁자 대용으로 사용한다. 갖고 있는 의류는 20여벌.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다. 그는 “가능한 부분은 ‘0엔’으로 하고 싶다. 삭감할 수 있는 부분이 꽤 있다”고 마이니치신문에 말했다.
일본에서 지출을 극도로 줄이는 ‘0엔 생활’이 점점 인기를 모으고 있다. ‘0엔 생활’을 주창하는 책이 팔리고, 자급자족하는 TV 프로그램이 화제다.
앞서 야요이처럼 최소한의 필요품으로 생활하는 사람은 ‘미니멀리스트’로 불린다. 일본에선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탈(脫)원전의존’을 목표로 미니멀리스트가 된 이들이 늘었다. 2015년 ‘신조어·유행어 대상’ 후보에 오를 정도였다.
이런 흐름은 필요 없는 물건을 없애고, 지출을 최대한 줄이는 ‘0엔 생활’의 추구로까지 이어졌다. 야요이가 하루하루의 ‘미니멀 라이프’를 쓴 블로그는 하루 6000~8000명이 조회할 정도로 관심이 높다.
최근 일본의 방송에서도 이런 관심이 드러나고 있다. 연예인들이 최소한의 물과 조미료로 무인도에서 버티는 ‘무인도 0엔 생활’, 버린 식재료를 활용하는 ‘더 철완 DASH! 0엔 식당’이 인기다. 출판계에서도 ‘0엔 생활’을 제목에 단 책들이 팔리고 있는 등 ‘0엔 생활’에 대한 주목도가 높다.
‘극도의 절약’ 지향은 통계 자료에서도 나타난다. 다이이치(第一)생명경제연구소가 지난해 전국 성인 1만7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최소한 물건으로 깔끔하게 살고 싶다”는 응답이 75%였다. 미야키 유키코 수석연구원은 “물건을 버리는 데도 돈이 들기 때문에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어차피 필요 없어질 물건이라면 사지 않거나 대여하면 된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공유 서비스나 ‘셰어 하우스’ 등 공유 경제가 확산되고 있는 것도 비슷한 흐름으로 분석된다.
‘0엔 생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두고 풍요로운 삶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경제학자인 미즈노 가즈오(水野和夫) 호세이대 교수는 “경제 성장을 이룬 일본에선 가정에 필요한 물건은 다 갖추어져 있어 가전제품 등 내구소비재를 바꾸는 수요밖에 없게 됐다”면서 “ 물건이 넘쳐나 원하는 물건이 별로 없는 상황이 개운하게 살고 싶다는 사람들을 낳은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미니멀리스트’로서의 생활을 강요당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 문제점도 지적된다. 가즈오 교수는 “기업은 사상 최고 이익을 내고 있어도 내부 유보금을 쌓고 있고, 임금으로 돌리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어절 수 없이 절약 생활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고 일본의 격차 문제를 지적했다. 실제 후생노동성이 종업원 5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통계조사에 따르면 평균 급여총액은 1997년 37만1670엔에서 2016년 31만5590엔으로 15% 줄어들었다.
현대 일본 사회의 폐색감(꽉 막혀 있는 느낌)을 배경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앞서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의 조사에선 ‘향후 지출을 늘리고 싶은 항목’(복수 응답)으로는 ‘저축 등 재산 만들기’가 40%로 1위에 올랐다. 미야키 수석연구원은 “어떤 세대도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있으며, 소비를 하는 데 신중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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