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와 맞닿은 일본 아키타(秋田)현 오가(男鹿)시. 바다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자리한 사찰 도센지(洞泉寺)에는 유골 10구가 임시 안치돼 있다. 이 유골들은 지난해 11~12월 북한에서 표류해온 것으로 보이는 조잡한 목선 내부 등에서 발견된 것이다.
본당에 줄지어 놓여있는 하얀 유골함들 앞에서 주지 스님은 매일 아침 독경을 한다. 그는 “해마다 4~5구의 유골을 받아들이지만 작년은 이상하게도 많았다”고 도쿄신문에 말했다.
도센지는 오가시의 의뢰로 1950년대부터 신원불명의 유골을 받아들여왔다. 1~2년이 지나도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유골은 경내 무연고자 묘에 안치한다.
지난달 초 ‘재일조선인’이라는 여성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북한의) 어업권이 중국에 팔려서 거친 동해 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등의 내용이 써 있었다. 봉양에 써달라면서 1만엔이 동봉돼 있었다. 이밖에도 감사 편지가 몇 통 더 왔고, 명복을 빌기 위해 절을 방문한 남성도 있었다. 주지 스님은 “북한에 대한 생각은 복잡하겠지만 따뜻한 반응이 많아 안심”이라고 했다.
해가 바뀌었어도 북한 추정 어선이나 어민의 시체가 일본 해안에 떠밀려오는 일이 그치지 않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이시카와(石川)현 가나자와(金澤)시 앞바다에 북한 어선 추정 목선 1척이 뒤집힌 채 밀려왔다. 부근에선 일부 백골화한 남자 시신 1구가 발견됐고, 며칠 후 선박 안에서 남자 시신 7구가 수습됐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2013~2016년 50~60척이던 북한 추정 어선은 지난 1년 간 사상 최대인 104척이 밀려왔다. 이중 생존자가 있는 경우는 5건으로 42명이다. 시신이 발견된 경우는 11건으로 43명의 사망이 확인됐다. 일본에 표류해오는 배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북한 당국이 식량난 타개를 위해 어업을 장려하면서 어민들이 먼 바다까지 나온 데다 예년보다 날씨가 안 좋아서 풍랑에 휩쓸렸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일본 당국에 발견되지 않고 바다를 떠도는 배와 시신도 적지 않을 것이다.
안전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낡은 목선을 타고 거친 바다로 나오는 이들. 그리고 시신이 되어 차가운 바다를 떠도는 이들. 북한 당국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해야할 책임을 사실상 방기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이들 표류 어선과 어민에 대한 일본 사회의 반응은 씁쓸함을 자아낸다. 북한 핵·미사일 위기론과 맞물려 과도한 불안을 조장하는 것은 물론, ‘북한 때리기’ 소재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관심은 북한 공작선이 아닌지, 북한 스파이가 타고 온 건 아닌지에 집중됐다. 지난 11월 홋카이도 앞바다 무인도에 표착한 북한 어민들의 ‘도둑질’이 여론을 악화시켰다곤 해도 과잉 반응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치인과 언론들이 이런 분위기를 더욱 키웠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공작원 등 여러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고, 집권 자민당의 한 의원은 바이오 테러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북한 공작원이 굳이 낡은 목선을 타고 거친 겨울 바다에 나와 일본에 잠입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란 추론은 묻혔다. 과열 반응이 지나고 남은 것은 냉담이다.
어지간한 사정이 있지 않고서야 목숨을 걸고 차가운 바다로 나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차가운 바다를 시신으로 떠도는 이들도 누군가의 남편, 아버지, 자식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시신이 되어서도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한다. 북한 당국이 인수에 소극적인 탓도 있어서, 앞서 도센지 같은 곳의 무연고자 묘에 묻힌다. 이들은 ‘신원불명의 행로병자’로 처리된다고 한다. 앞서 도센지 주지 스님은 “일본인도 북한인도 생명의 무게는 같다. 시신은 가족이 있는 본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장례식도 올리지 못한다. 부디 편안히 잠들라고만 기원하고 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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