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을 크게 흔들면서 속보(速步)로 걷기’.
일본 후쿠오카(福岡)에 사는 전직 교사인 남성(86세)이 매일 규칙적으로 하는 일이다. 그의 장남은 47세. 버블 경제가 한창이던 1989년부터 시작된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상태가 29년째다. 이 남성은 “자식의 히키코모리가 길어지면 부모도 우울 상태가 된다.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데는 운동이 좋다”고 아사히신문에 털어놓았다.
아들이 이상을 일으킨 것은 대학 입시가 계기였다. 제1지망의 국립대에 떨어져 다른 대학에 갔지만, 얼마 안 있어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버블 붕괴나 정보통신(IT) 사회의 도래, 대지진 등 세상의 격동 속에서도 사회와의 접점을 갖지 못한 채 살아왔다. 아르바이트도 계속하지 않았다.
이 남성은 퇴직금도 바닥을 드러내 “이대로라면 부모자식이 함께 파산할 것”이라고 생각, 4년 전 아들을 남겨둔 채 아내와 함께 고령자 임대주택으로 이사했다. 아들은 지난해 여름부터 생활보호를 받고 있는데, 최근 생활보호비 인하 뉴스가 신경이 쓰인다. 이 남성은 일본 유일의 히키코모리 당사자 단체인 ‘KHJ전국히키코모리가족회연합회(KHJ연합회)’에 참가하고 있다. 남성은 “앞으로 남은 생이 3~4년 일 텐데, 히키코모리의 해결을 위해 가능한 일을 한 뒤 저 세상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 남성의 사례처럼 최근 일본에선 히키코모리와 장기화·고령화로 인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부모가 고령화하면서 수입이 끊기거나 병에 짓눌려 가족 전체가 고립·빈곤화하는 경우가 두드러지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 사후 히키코모리 자식의 생활 곤궁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80대 부모와 50대 자식 세대의 생활 곤궁을 의미하는 ‘8050 위기’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고 있다. ‘8050 문제’가 노인이 된 아들이 부모를 부양하는 ‘노노(老老)’ 문제나 ‘노인 독거 ’문제와는 다른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일본 정부도 실태 파악에 나섰다. 3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내각부는 올해 40~59세 히키코모리를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를 처음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지금까지 젊은 세대의 문제로 생각해 조사대상에서 배제했던 중장년 히키코모리의 실태와 문제점을 파악해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히키코모리 실태조사는 과거 2010년과 2015년 2차례 실시된 바 있지만, 이지메(집단 괴롭힘)나 등교 거부 등으로 일어나는 젊은 세대의 문제로 거론됐기때문에 대상을 15~39세로 한정했다.
하지만 당시 조사에서도 히키코모리가 장기화·고령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15년 조사에서 ‘일자리나 학교에 가지 않고 반년 이상 가족 이외에는 거의 교류하지 않고 집에 있는 사람’의 숫자는 54만명으로 2010년보다 약 15만명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히키코모리 기간은 ‘7년 이상’이 2010년보다 2배 늘어난 34.7%로 가장 많았다. 히키코모리가 된 연령도 35~39세가 10.2%로 2010년 조사보다 두 배로 늘었다. 마이니치는 “부모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지원을 요청하지 않은 채 고령화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간 히키코모리 가족이나 지원단체는 ‘8050문제’의 실태를 하루 빨리 파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내각부는 40~59세 구성원이 있는 전국 5000세대를 추출해 조사원이 방문, 취업·생활 상황, 외출 빈도, 히키코모리 계기와 기간 등을 조사한 뒤 전국 추계도 추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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