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키나와(沖繩)현에서 미군 대형 헬기가 불시착한 사건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끊이지 않는 미군기 사고에 오키나와 현지의 반발이 커지면서다. 집권 자민당은 이번 사고로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 문제가 쟁점화하면서 중의원 선거에 영향을 주지 않을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슬픔과 억울함, 분노를 느낀다. 이런 상황을 국가에 강요당하는 게 오키나와에는 국난(國難)이다.”
13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오나가 다케시(翁長雄志) 오키나와현 지사는 전날 헬기 사고 현장을 방문한 뒤 이렇게 말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중의원 해산 이유로 거론한 ‘국난’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정부에 대한 불신감을 표출한 것이라고 아사히신문은 설명했다.
앞서 지난 11일 오후 오키나와 북부 히가시손(東村) 미군 훈련장 근처에서 CH53 대형 수송헬기가 긴급 착륙 후 기체에 불이 붙으면서 크게 파손됐다. 사고 현장은 민간 목초지로 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불과 200m 거리다.
CH53은 병력 수송에 사용되는 헬기로 2004년에는 오키나와 국제대학에 추락해 승무원 3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대학 건물과 주택 지붕이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다. 지난해 12월에는나고(名護)시 인근 해상에서 수직이착륙기 오스프리가 불시착해 2명이 다치는 등 오키나와에선 주일 미군기의 사고가 잇따라 주민들의 불안과 분노가 고조되고 있다.
중의원 선거가 한창일 때 일어난 이번 사건은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집권 자민당은 이번 사고로 오키나와의 반(反) 기지 감정이 고조되고, 야권에 유리한 ‘바람’이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오키나와 면적은 일본 전체의 0.6%에 불과하지만 주일미군 시설의 70.6%가 집중돼 있다. 아베 정권은 오키나와 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군 후텐마(普天間) 기지를 헤노코(野古)로 이전하기 위한 매립 공사에 착수하면서 양측의 골은 더욱 깊어진 상태다.
아베 총리는 지난 11일 사고 소식을 보고받은 뒤 상세한 정보 제공과 원인 규명, 재발 방지 등을 미국 측에 요청하라고 지시했다.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방위상은 13일 원인 규명과 안정성 확보가 될 때까지 사고 헬기와 같은 기종의 비행을 정지시킬 것을 미국 측에 요청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선거에 영향이 나오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다는 뜻이다.
야당은 이번 사고를 매개로 정권 비판을 강화하고 있다.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 입헌민주당 대표는 12일 오키나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위기의식과 민의에 대한 감각이 둔하다”라고 비판했다. 시이 가즈오(志位 和夫 ) 공산당 위원장은 같은날 거리 유세에서 “더 이상 기지와는 공존할 수 없다. 오키나와의 문제는 일본 국민 모두의 문제”라고 호소했다.
오키나와의 지역구 4곳에선 오나가 지사를 지지하는 정당이나 노조로 구성된 ‘올 오키나와’가 지원하는 후보와 자민당 후보가 대결하고 있다. 전국 선거에서 연승을 이어가고 있는 자민당은 오키나와에서만큼은 2013년 참의원 선거 이후 연패하고 있다. 3년 전 중의원 선거 때는 지역구 4곳 모두에서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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