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난 돌파 해산.”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25일 저출산고령화와 북한 정세 등 ‘국난(國難)’을 중의원 해산 이유로 들고 “국민의 신뢰 없이는 대개혁, 의연한 외교를 추진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소비세 증세로 인한 세수 증가분의 용처 수정과 북한 대응을 ‘조기 총선’의 2대 쟁점으로 띄웠다.
하지만 이 2대 쟁점은 여야 모두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들인데다, 아베 총리의 주장에 모순점이 발견되는 탓에 ‘조기 총선’ 명분과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결국 사학스캔들 회피 등을 위한 ‘대의(大義) 없는 해산’이라는 비판을 피하려고 ‘국난’으로 포장한 급조된 명분에 불과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소비세 증세분의 용처 변경
아베 총리는 전(全)세대형 사회보장제도로 전환하기 위해 2019년 10월로 예정된 소비세율 인상(8%→ 10%)분 일부의 용처를 국가 채무 변재에서 유아교육 무상화 등에 돌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의 신임 없이 국론을 이분(二分)할 대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조기 총선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교육 무상화는 야당인 민진당이 이전부터 주장해온 정책이다. 아베 총리가 주장하듯 국론을 이분할 쟁점이 아닌 셈이다. 오히려 소비세율 인상분의 용처 수정은 국회는 물론 자민당 내에서도 논의된 적이 없다고 아사히신문은 지적했다.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민진당 대표는 25일 “소비세율이 인상되는 것은 2년 뒤다. 왜 지금 해산 총선거를 하는지 설득력이 없다”고 비판했다.
소비세율 인상분의 사용처 변경으로 2020년도에 기본 재정수지를 흑자 전환하겠다는 정부의 재정목표 달성은 어렵게 됐다. 아베 총리는 이 점을 인정하면서도 “재정건전화의 기치를 내리는 것은 아니다”면서 사회보장 충실화와 재정 건전화 양자를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총선거를 의식한 ‘장밋빛 공약’으로, 결국 재정건전화라는 목표를 뒤로 미룬 것이라고 마이니치신문은 지적했다.
무엇보다 아베 총리가 주장한 ‘전 세대형’ 사회보장제도로의 전환은 민주당 정권 때 민주, 자민, 공명 3당이 소비세 증세와 함께 합의한 것이다. 그 소비세 증세를 2번이나 미룬 것은 아베 총리였다.
■북한 대응
아베 총리는 또 북한 대응을 중의원 해산의 또다른 이유로 들었다. “국민의 신임을 얻어 이 나라를 지켜나갈 결의”라고 했다.
그러나 정부의 대북 압력 방침에 대해 야당에서조차도 큰 이론(異論)이 나오지 않고 있다. 게다가 집권 자민당과 공명당은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어 정권기반이 안정돼 있다고 할 수 있다. 굳이 지금 국민의 신임을 물어야하는 이유로 설득력이 부족하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유엔 안보리 제재안의 효과가 향후 3개월에서 반 년 후 나타나 북·미 간 무력충돌이 우려될 정도로 사태가 긴박해지는 것은 내년 이후로 보고 조기 해산을 결정했다. 이 부분은 쏙 뺀 채 ‘국난’이라는 점만 강조하고 있다. 북한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 언제가 적절한 해산 시점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결국 북한 정세가 긴박한 가운데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중의원을 해산해 ‘정치공백’을 만드는 이유가 국민들의 이해를 얻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같은 비판을 의식한 듯 아베 총리는 26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방위상에게 “중의원 선거가 끝날 때까지 확실히 대응해 가고 싶다”면서 선거 기간 중에도 도쿄 내에 남아 경계태세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학원 스캔들
아베 총리는 조기 총선이 모리토모·가케학원 등 학원 스캔들 추궁을 피하려는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폐회 중 심사 출석 등 정중하게 설명하는 노력을 계속해왔고, 앞으로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6월 정기국회 폐회 후 이 문제를 두고 열린 폐회 중 심사는 중·참의원 각 2차례이고, 아베 총리는 한 차례씩만 출석했다. 야당이 요구해온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나 가케학원 이사장의 증인 출석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야 4당이 지난 6월22일 요구한 임시국회는 3개월이 지난 9월28일에야 열기로 합의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아베 총리가 임시국회 개회와 동시에 중의원을 해산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진지하게 설명 책임을 다하겠다”던 아베 총리의 공언과 달리 모리토모·가케학원 문제는 질문 한 차례 없이 넘어가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는 “헌법상 문제는 없다”고 했다. 반면 야당은 “헌법 위반, 추궁 회피”라고 비판하고 있다.
아사히 신문은 26일자 사설에서 “민주주의와 입헌주의를 깔보는 총리의 자세야말로 이번 총선의 쟁점”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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