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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마 에이지 "지금 왜 반체제인가"...아사히신문 '논단시평'

 일본 아사히신문에 매달 마지막주 목요일에 게재되는 '논단시평'이라는 게 있다. 그 달의 잡지 가운데 눈에 띄는 글들이나 흐름들을 소개하는 면이다. 

 이번 달에는 한국에서도 <사회를 바꾸려면>으로 잘 알려진-물론 이 책을 읽지 않았지만- 오구마 에이지(小熊英二) 게이오대 교수의 '우파의 개헌'이라는 글이 실렸다. 호기심 반 일본어 연습 반의 마음으로 글을 읽다보니 참고할 게 많다. 

 문제는 다른 언어로 된 글을 읽으면 가뜩이나 나쁜 머리에 저장이 잘 안된다는 것. 얼치기 번역이지만 자료 삼아 남겨놓는다. 

 ‘전후(戰後)’란 무엇일까.

 일본 이외의 나라에선, ‘전후’는, 패전 직후의 10년 정도를 가리키는 단어다. 일본에서도, 패전으로부터 약 10년인 1956년에 ‘이미 전후는 아니다’라는 말이 널리 퍼졌다. 그런데 ‘전후 X년’이라고 하는 말은 지금도 쓰고 있다. 

 그건 왜일까. 나의 지론을 말한다. ‘전후 X년’은, ‘일본국 건국 X년’의 대용(代用)인 것이다.  

 현재의 국가에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 건국된 것이 많다. 중국, 인도, 독일, 이탈리아 등은 대전 후에 ‘건국’된 체제다. 이들 나라들은 체제 변경으로부터 계산한 ‘건국 X년’을 기념한다. 

 일본에서도 대전 후, ‘대일본제국’이 망하고 ‘일본국’이 건국됐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체제 변경이 있었다. 하지만, 그 체제 변경으로부터 계산해서 ‘일본국 건국 X년’이라고 부르는 것을 정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건국’에 상당할 정도의 체제 변경이 있었던 것은 의심할  수 없다. 그런데도 그 시대 구분을 나타내는 단어가 없다. 그 때문에 자연발생적으로, ‘건국 X년’을 대신해 ‘전후 X년’이라고 말하게 됐다. 그래서 전쟁으로부터 몇 년이 지나도 ‘일본국’이 지속되는 한 ‘전후’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전후’가 끝나는 걸까. 그것은 ‘일본국’이 끝나는 때다. 

 전후헌법체제는 국민주권, 기본적 인권의 존중, 평화주의를 3대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것을 변경할 정도의 체제 변경이 있으면, 체제로서의 ‘일본국’은 끝나고, ‘전후’도 끝난다. 예를 들어, 천황주권, 언론·출판의 제한, 평화주의의 방기 등을 개헌에 의해 국가원칙으로 한다면, ‘일본국’과 ‘전후’는 끝날 것이다. 

 그렇다면, 패전후의 ‘보수’ ‘혁신’의 대립은 무엇이었던 것일까. 그것은, 새롭게 건국된 ‘일본국’을 인정할 것인가, 인정하지 않을 것인가를 둘러싼 대립이었다. 

 이러한 대립은 일본뿐만 아니다. 요시다 토오루(吉田徹)는, 구미제국에 걸친 여야당 대립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다. 제2차 대전 후 커다란 체제 변경을 경험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는 체제를 둘러싼 이데올로기 대립이 생겼다. 공산당을 시작으로, 체제를 부정하는 ‘반체제정당’이 힘을 가지는 일도 많았다. 체제가 안정돼, 반체제정당도 온건화해, 체제의 테두리 안에서의 정권교체가 정착한 것은 70년대 이후였다. 

 요시다는 이러한 도식은 일본에서도 들어맞는다고 말한다. ‘자본주의나 강화조약, 혹은 헌법개정을 둘러싼 일본의 여야당의 대립관계’도 '체제를 둘러싼 이데올로기 대립’이었다고 생각한다면 그와 같다. 

 하지만 일본이 복잡한 것은 전후체제를 인정하지 않는 ‘반체제’의 주요세력이, 공산당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확실히 공산당도 당초에는 전후체제를 인정하지 않고, 1946년에는 일본국헌법의 도입에 반대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강력한 ‘반체제’ 세력은 전후체제를 인정하지 않는 우파였다. 

 예를 들어 1978년에 A급 전범을 합사(合祀)한 야스쿠니 신사의 구지(宮司·신사의 제사를 맡는 최고위 신관) 마쓰다이라 나가요시(松平永芳)는 이렇게 말했다. “현행 헌법의 부정은 우리들이 바라는 바이지만, 그 전에 극동군사재판이 있다. 이 근원을 때려버리고자 하는 의도 아래, ‘A급 전범’ 14주(柱)를 새롭게 제신(祭神)으로 했다.” 

 이것은 명확학 전후질서에 대한 ‘반체제’의 표명이다. 이러한 의도에서 합사에 의해,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전후에 구축된 국내체제와 국제질서에의 도전으로 간주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하지만 일본에서도, 70년대까지는 ‘반체제’의 기운은 수습됐다. 공산당의 온건화도 있지만, 더 컸던 것은 60년대 이후의 자민당이 개헌을 보류했던 것이다. 자민당이 안정된 지지를 국내외에서 얻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반체제’의 측면을 봉인한 것에 있다. 

 하나의 체제가 안정되는 데는 다소 세월이 걸린다. 다른 나라도 그랬던 것처럼 일본에서도 전쟁으로부터 20년도 지나자, 좌우 양극의 ‘반체제’는 정당정치의 주류에서 사라졌다. 냉전종결 후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정착해, 체제의 테두리 안에서의 정당간 경쟁과 정권 교체가 일본에서도 정착한 듯 보였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려는 듯한 ‘체제를 둘러싼 이데올로기 대립’이 부활하고 있다. 일찍이 ‘전후 레짐으로부터의 탈각’을 제창한 총리가, 개헌을 제안한 것에 의해서다. 

 하지만 지금의 일본에는 훨씬 긴급한 과제가 산더미다. 이번 달 잡지를 읽는 것만으로도, 700만에 달하는 ‘쇼핑 난민’, 선진국 최저 수준의 주택보장정책, 과로사로 상징되는 ‘일하는 방식’의 개혁, 외국인노동자의 인권, 유아교육의 무상화 등이 눈에 들어온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체제를 둘써산 대립이 해소된 70년대 이후, 이러한 사회문제에 대한 대책이 이뤄졌다. 정당간 대립도 그러한 쟁점 쪽으로 이동해, 그 안에서 젊은 층의 정치 참가도 진행됐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지금까지도 종래의 대립이 꼬리를 끌고 있다. 최대의 원인은, 오른쪽으로부터의 ‘반체제’가 뿌리깊은 것이다. 

 하지만 각종 여론조사가 나타내는 것처럼 국민 대다수는 개헌의 필요 등은 느끼지 않고 있다. 정치가 사회로부터 뒤처져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젊은 층의 정치적 무관심의 한 원인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체제 변경은 체제 내의 법률개정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외의 체제 변경은 시간과 정치적 자원의 낭비다. 그러한 ‘개헌’에는 반대다. 건국 72년을 맞이하는 ‘일본국’의 미래를 위해서, 보다 해야할 일이 그외에 있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