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도쿄 도의회 선거가 자민당의 ‘역사적 참패’와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 세력의 대승으로 끝났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2012년 12월 2차 내각 발족 이후 굳건하게 유지하던 ‘아베 1강’ 체제는 타격을 입게 됐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아베의 독주와 오만에 ‘경종’을 울렸을뿐, 자민당 중심의 일본 보수 체제에 균열을 낸 것은 아니다. 정치적 성향이 아베와 큰 차이 없는 극우·보수파 고이케 지사가 ‘포스트 아베’를 노리기 위해 언제든 자민당과 연계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자민당은 3일 아베 총리 주재로 임시 지도부 회의를 열고, 당이 결속해 정권을 뒷받침하기로 했다고 NHK 등이 전했다. 아베 총리는 “결과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국민 신뢰를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민당은 전날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역대 최저인 23석을 얻었다. 반면 고이케 지사가 이끄는 도민퍼스트회(49석)를 비롯한 ‘고이케파’는 전체 127석의 절반을 훌쩍 넘는 79석을 챙겼다.
아베 총리는 다음달 개각과 당직 개편을 고민 중이다. 새 얼굴을 내세운 ‘대폭 개각’ 가능성도 점쳐진다. 하지만 공세적인 정권 운영은 주춤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지금처럼 개헌을 밀어붙이다가는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아베 다음은 아베’라는 말까지 나왔던 총재 3연임도 불투명해졌다.
아베의 일방통행식 독주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드러난 것은 분명하지만, 자민당 정권에 대한 불신이 대안 세력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번 선거 결과는 아베 정권의 ‘자책골’이란 지적이 많다. 자민당과 도민퍼스트회가 경합하던 선거 구도는 캠페인 막바지에 자민당 의원·각료들의 막말이 잇따르면서 격차가 벌어졌다고 요미우리신문은 분석했다. 자민당의 최대 패인은 오만과 해이였던 셈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55년 체제(2차 대전 후 일본의 정치체제) 하에서 자민당은 좌·우 모두에 좋은 얼굴을 하는 두루뭉술한 정당이었고, 보수인 동시에 리버럴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아베의 자민당은 이전과 달리 대결 위주 정치를 하면서 반감을 샀다. 선거에선 ‘경제 최우선’을 주창하다가 선거가 끝나면 특정비밀보호법이나 안보관련법 등 논란 많은 법률들을 ‘수의 힘’으로 밀어붙이곤 했다.
이 틈을 파고든 게 ‘고이케 극장’ 정치다. 고이케는 자민당을 ‘적’으로 설정하고 개혁을 내세웠다. 그러나 개혁 정책이나 자민당과 차별화된 정책노선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선 고이케를 지지하는 이유로 ‘개혁 자세나 방식’을 든 응답자가 44%였다. ‘정책’이라는 응답은 4%에 불과했다. 결국 누가 더 새롭게 보이느냐 하는 ‘이미지 메이킹’이 주효했던 것이다.
고이케는 자민당 내 비주류였다. 개헌을 주장하고, 일본 최대 극우단체인 일본회의의 국회의원 간담회 부회장을 지내는 등 극우 성향으로도 분류된다. 자민당 독주에 대한 반발이 기성 야당이나 시민사회에 기반을 둔 새로운 정치세력에 힘을 싣는 쪽으로 가는 대신, 자민당에서 떨어져나온 세력에게 간 셈이다.
고이케는 이번 선거에서 증명된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포스트 아베’를 노릴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하지만 도민퍼스트회를 발판 삼아 자민당에 맞설 대안 야당 정치인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적다. 우치야마 유(內山融) 도쿄대 교수는 “고이케 지사는 아베 총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면서 “도민퍼스트회와 자민당의 연대를 추진하거나, 고이케가 직접 자민당에 복귀해 ‘포스트 아베’를 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당의 얼굴만 바뀔 뿐 보수 체제라는 본질은 변함이 없는 셈이다.
제1야당인 민진당은 이번 선거에서 겨우 5석을 얻었다. 자민당의 실책을 부각시키지 못했고, 대안 세력으로서의 존재감도 없었다. 그나마 아베 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표를 모은 공산당이 의석을 2석 늘려 19석을 차지했다. 우치다 교수는 “2009년 민주당(민진당의 전신)은 정권을 교체했지만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다”면서 야당이 정치의 중심이 되는 데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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