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개가 유부를 낚아채는 듯한 생각을 뻔뻔하게 선거 쟁점으로 하려고 한다. 그야말로 쟁점 지우기다.”
일본 제1야당인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대표는 19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사진)가 소비세 증세분을 교육무상화 등에 쓰겠다는 총선 공약을 꺼내든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솔개가 유부를 낚아챈다’는 말은 애써 얻은 물건을 불시에 빼앗는다는 뜻이다. 마에하라 대표는 지난 1일 대표 선거에서 유아교육 무상화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소비세 증세분으로 재원을 충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간판정책’을 아베 총리가 훔쳤다고 강한 불쾌감을 표시한 것이다.
‘9월28일 중의원 해산, 10월22일 총선거’ 카드를 꺼내든 아베 총리가 교육무상화 등 ‘사람만들기 혁명’을 핵심공약으로 하겠다는 구상을 내놓는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조기 선거’의 대의명분이 없다는 비판을 피하고, 선거 승리에만 초점을 맞춘 포퓰리즘 정책 아니냐는 것이다. 야당 정책을 베껴서 ‘물타기’를 하는 아베 총리의 장기가 발휘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20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자민당은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 정책)의 가속화, ‘전 세대형’ 사회보장제도 실현, 대북 압력 강화, 자위대 규정 명기 개헌 등을 정권공약으로 내걸기로 했다. 특히 고령자 중심의 사회보장제도 개정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우기로 했다. 현재 아베 정권이 ‘간판정책’으로 밀고 있는 ‘사람만들기 혁명’에서 검토 중인 유아교육의 무상화나 고등교육 부담 경감 등을 통해 ‘전 세대형’ 사회보장제도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19년10월로 예정된 소비세율 인상(8%→ 10%)에 맞춰 증세분 일부를 국가 채무 변재에서 육아 지원 등으로 용도변경하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오는 25일 기자회견을 통해 중의원 해산 계획과 함께 이 같은 구상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가 정권 유지를 위한 해산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간판 공약을 급조한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정책 선거 프레임’을 통해 이번 조기 해산이 결국 모리토모(森友) 학원 국유지 헐값 매각과 가케(加計) 학원 수의학부 신설 특혜 의혹 등을 덮으려는 ‘모리·가케 해산’이라는 점을 호도하려 한다는 것이다. 모리·가케는 일본의 메밀면 음식인 소바의 종류이기도 하다.
사회보장 강화와 소비세 증세분을 통한 재원 충당이 선거 쟁점이 되면, 야당의 공격이 무뎌질 수밖에 없다. 이에 민진당은 아베 총리가 민진당이 주장해온 정책을 모방하고 있다면서 “쟁점 지우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야당표 정책’을 선점해 지지율 제고를 노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1억 총활약 사회’를 위한 구체적인 추진정책으로 동일노동·동일임금, 초과근무제한 강화 등 야당이 주장해온 정책을 내세웠다.
아베 총리의 이런 공약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소비세 인상분을 교육무상화 등에 투입할 경우 재정 흑자 달성 목표가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아베 총리는 증세분 80%를 재정 건전화에 투입해 오는 2020년 국가 적자를 흑자로 전환하는 게 목표였다”면서 “증세분을 사회 복지에 투입하면 이 목표는 연기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늘어나는 노인 사회보장비를 수술하지 않고 교육예산을 늘리면 재정건전화가 더 멀어진다는 이유로 아베 총리의 공약이 포퓰리즘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아베 총리가 내건 ‘사람 만들기 혁명’이 겉만 번지르르한 정책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아베 총리는 지금까지 ‘지방 창생’, ‘1억 총활약’, ‘일하는 방식 개혁’ 등의 간판정책을 계속 내놓았지만 ‘속 빈 강정’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왔다. 일본 외교가의 한 관계자는 “캐치프레이즈만 바뀌었지, 그 밥에 그 나물 아니냐”면서 “재원을 어디서 확보하느냐가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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