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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가 그렇게 말한다면”…제2의 ‘론·야스 밀월’의 명암

 “알겠다. ‘신조’가 그렇게 말한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4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전화회담에서 “신조, 렉스(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베이징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물었다. 틸러슨 장관이 “북한이 핵 포기 협상에 응할 의사가 있는지 확인 중”이라고 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곧바로 “‘리틀 로켓맨’과 협상을 시도하느라 시간낭비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엇박자’가 드러났을 때였다. 아베 총리는 “지금은 대화할 때가 아니라 압력을 가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미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측근에도 말하지 않는 것을 아베 총리에게 상담하는 일도 있다”고 전했다. 
 아사히신문이 3일 복수의 미·일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묘사한 미·일 정상간 ‘밀월’ 관계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월 뉴욕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도 오는 12일 필리핀에서 열리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정상회의에서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을 만나야 하는지 물었다. 아베 총리는 “회담하는 쪽이 좋다”고 재촉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알겠다. 신조가 그렇게 말한다면 회담하겠다”고 응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참모들도 동석한 자리에서 일본 총리에게 ‘외교 지침’을 받는 경우는 “그다지 사례가 없다”고 전했다. 현재 국무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부재하는 트럼프 정권에서 아베 총리를 “아시아 담당 대통령 보좌관”이라고 부르는 미·일 외교관계자도 있을 정도라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이처럼 미·일 두 정상은 서로를 ‘신조’ ‘도널드’라고 부르는 관계로까지 발전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정상회담 4차례, 공개된 전화회담만도 16차례다. 특히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하면 반드시 연락하고 있다.
 이를 두고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서로를 ‘론’ ‘야스’라고 부르면서 전후 가장 긴밀한 동맹을 구축했던 ‘론-야스’ 밀월 관계를 재현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아베 총리는 제2의 ‘론-야스’ 관계 구축을 위해 진력해왔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인 지난해 11월8일 곧바로 축하전화를 했고, 9일 만인 17일 뉴욕 맨해튼 트럼프타워로 달려가 트럼프 당선인과 외국 정상으로선 처음 만났다. 일본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국내외에서 비판적인 견해가 강했던 트럼프 대통령을 아베 총리가 제일 먼저 만나 자신의 외교지식이나 정치 경혐을 말한 게 트럼프 대통령의 신뢰를 얻었다. 당시 회담 장소에 있었던 윌리엄 해거티 주일 미국대사는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훌륭한 인상을 남겼다”고 말했다. 
 양국 정상의 ‘밀월 관계’ 구축에는 일본 특유의 ‘오모테나시(특별한 접대)’ 외교도 작용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회동에서 최고급 골프채를 선물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미가 골프라는 점을 알고 준비한 것이다. 두 사람은 지난 2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1박2일 간 골프를 쳤다. 
 두 정상의 밀월 관계는 오는 5~7일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방일을 통해 절정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와규(일본산 소고기) 철판구이, 세계 랭킹 4위인 마쓰야마 히데키가 동반하는 골프 라운딩, 트럼프 대통령의 손녀인 아라벨라가 좋아하는 일본 개그맨 피코 타로가 참석하는 만찬 등 ‘극진한 대접’을 준비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양 정상이 개인적으로 강한 신뢰관계를 갖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데 미·일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고 전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 일변도의 정상 외교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틸러슨 국무장관의 경우처럼 “대화에 의한 해결”을 주장하는 등 미 정부 내에 반드시 한 가지 의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일본은 북한에 대한 압력 정책 이외에 구체적인 수단을 내놓지 않고 미국에만 기대는 정책에 머물고 있다고 아사히는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중국과 ‘딜’을 해서 북·미 대화로 방향을 잡을 경우 일본만 버림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아울러 국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외치’에서 점수를 딸 수밖에 없어 이번 방일 기간 대일 무역적자 등을 거론하면서 “일본이 도와줘야 하지 않겠냐”고 압박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미 정부 전직 고위관료는 “트럼프 대통령은 예측하기 어렵다. 한 사람의 인간에 지나치게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