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얘기했지만, 지난 2개월 간 ‘구룻토 패스’ 덕을 꽤 봤다.
‘구룻도 패스’는 도쿄와 인근 80개 미술관·박물관의 입장권과 할인권을 모아놓은 티켓북이다.
2000엔에 유효기간 2개월. 미술관 입장권이 1000엔 가까이 하는 걸 생각하면, 부지런히 발품을 팔면 꽤 유용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2개월 간 둘러본 곳이 15곳 정도밖에 안된다. 하루 만에 몇 군데를 둘러보는 게 쉽지 않고, 도쿄 중심부에서 꽤 떨어진 가나가와현이나 사이타마현의 미술관까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덕분에 구경 한 번 잘 했네~’라는 쪽이 강하다. 미술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차분한 분위기가 좋고, 둘러보고 나왔을 때 뭔가 눈과 마음이 한꺼풀 벗겨진 느낌이 좋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자체가 근현대 건축 기술을 집적해놓은 곳이기도 하고.
구룻토 패스 유효기간이 거의 다 됐다. 지금까지 둘러본 곳을 기록해둔다.
■미쓰이(三井)기념미술관
구룻도패스를 들고 제일 처음 찾아간 곳이다. 도쿄역 근처 니혼바시(日本橋) 미쓰이 본관에 있다. 미쓰이 본관은 1929년 준공된 중후한 서양식 건물인데, 바로 옆에는 현대식 건물인 미쓰이 타워가 붙어 있다. 미쓰이 미술관은 본관 7층에 있는데 미쓰이 타워 쪽으로 들어가 육중한 나무문으로 돼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게 돼 있다. 엘리베이터를 내리는 손님을 맞이하는 건 두 마리 사슴 동상.
미쓰이미술관은 일본 3대 재벌로도 불렸던 미쓰이 가문이 에도 시대부터 모아온 미술품 4000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일본의 잘나가는 기업들은 웬만하면 미술관 하나쯤은 갖고 있는 모양이다. 도쿄역 주변만 해도 미쓰이 미술관을 비롯해 이데미쓰 미술관, 미쓰비시 미술관, 브릿지스톤미술관 등이 산재해 있다.
미쓰이미술관을 방문한 지난 5월말에는 사이다이지(西大寺)전을 하고 있었다.
1250년 전 나라(奈良)에 건립된 사이다이지는 도다이지(東大寺)와 쌍을 이루는 사찰이었다고 한다. 헤이안시대 들어 쇠락했으나 가마쿠라 시대에 고승 에이존에 의해 재건됐다고 한다. 전시에선 사이다이지와 관련 사찰의 유물들을 볼 수 있었는데 거대한 관을 쓴 문수보살상이나 코끼리 위에 앉아 있는 보현보살상이 인상적이었다. 현재 미쓰이미술관에선 9월3일까지 '지옥도, 원더랜드’ 전을 열고 있는데 이쪽이 더 끌리긴 한다.
■아이다 미쓰오 미술관
도쿄역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유락초역 근처에 있는 도쿄국제포럼 지하 1층에 있다.
이곳을 찾기까지 아이다 미쓰오(1924~1991)라는 인물은 전혀 몰랐다. 일본의 서예가이자 시인이라고 한다. 일본 서예전에서 수상하는 등 촉망받는 서예가였으나 단순하고 선(禪)적인 서예를 추구하는 쪽으로 바뀐 모양이다. 아울러 자연과 생명에 대한 짧은 시들을 써갔다. 평생 ‘자신의 언어, 자신의 글씨’를 추구했고, ‘서(書)의 시인, 생명의 시인’으로 불린다고 한다.
전시실에 걸린 작품들은 마치 이철수의 판화를 보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단순하고 짧은 글들로 이뤄져 있다. 예컨데 이런 시. “비틀거린다는 것 좋지 않은가. 인간이니까”. 이 분에 대해 관심이 생겼는데 국내에는 <덕분에>라는 책이 소개된 모양이다.
■도쿄국립근대미술관
히가시교엔(東御苑)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 좋은 방’을 갖추고 있는 미술관. 일본 근대 미술뿐만 아니라 피카소 등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일전에 '[도쿄 부라부라] 도쿄의 ‘녹색 섬’... 황거 둘레 길을 따라'에서 소개했다.
■도쿄국립근대미술관 필름센터
공예관과 함께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의 별관격이다. 도쿄역 동쪽 교바시(京橋)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선 영화를 정기적으로 상영하는 시설과 관련 도서를 볼 수 있는 자료실을 갖추고 있다. 1층 로비에선 사람들이 이런저런 자료를 훑어보거나 영화 포스터를 살펴보고 있었다.
7층 전시실에는 일본 영화의 태동과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대부분 모르는 영화가 대부분이었지만. 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알겠다.
기획전으로는 9월10일까지 모치나가 다다히토(持永只仁·1919~1999) 전을 하고 있었다. 일본 인형 애니메이션 작가라는데 전시된 인형들을 보니 어디서 본 듯한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파나소닉 시오도메 뮤지엄
도쿄역에선 두 정거장 떨어진 신바시(新橋), 시오도메 근처 파나소닉 본사 4층에 있다. 프랑스 화가 조르주 루오 작품을 230점 정도 소장하고 있다. 아울러 파나소닉과 관련이 깊은 건축·디자인 전시도 자주 한다.
찾아갔을 때는 유럽에서 순회 전시를 했던 ‘일본, 집의 열도’라는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다양한 디자인의 일본 집을 사진과 영상, 모델로 소개하는 전시였는데 꽤 흥미로웠다. 누구나 한 번쯤 살고 싶은 집들을 모아놓았다.
파나소닉 건물을 나오면 바로 옆에 구 신바시 정차장이 있다. 일본 철도의 발상지인 신바시 기차역을 재현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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