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지도를 보면 한가운데 ‘녹색 섬’이 있다. 일왕의 거처인 ‘황거(皇居·고쿄)’다.  

도심 한가운데, 옛 에도성 자리에 위치한 황거는 도쿄에 '녹색'을 더해주고 있다. 히가시교엔(東御苑)은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나 영국의 하이드파크처럼 도심 공원의 역할을 한다. 

황거는 외호(外濠·성 바깥의 해자)로 둘러싸여 있는데 외호를 따라 조성된 길은 러너들 사이에선 ‘황거 러닝 코스'로 불린다. 매일 저녁 5㎞ 정도 되는 둘레길을 달리는 러너들이 많다. 

가끔 시간이 남을 때 황거 주변을 걸었다. 요즘은 더워서 쉽지 않지만. 사무실에서 히가시교엔으로 들어가는 문 가운데 하나인 오테몬(大手門)까지는 걸어서 10분 남짓이다.  

히가시교엔을 비롯해 황거 주변에는 국립근대미술관, 국립고문서관, 국립과학관, 부도칸(武道館) 같은 시설이 들어서 있다. 이들을 둘러보는 것은 근현대 도쿄 100년사를 체험할 수 있는 한 방법이다.

히가시교엔은 옛 에도성의 일부를 왕실 부속정원으로 정비해 1968년 일반에게 공개했다. 면적은 약 21㎡. 월·금요일은 휴원이다. 

 

해자를 건너 오테몬을 통해 히가시교엔으로 들어간다. 

안내소에서 플라스틱 입장권(무료다)을 받아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에 일본 궁내청(宮內廳)이 운영하는 미술관인 산노마루(三の丸) 쇼조칸(尙藏館)이 있다. 1993년 개관. 일본 왕실에서 기증한 미술품 9800점을 소장하고 있다. 6월25일까지 ‘명소그림에서 풍경화로-정경과의 대화’ 전이 열리고 있다. 17~18세기부터 20세기초까지 풍경화를 전시하고 있다. 미술에 크게 관심이 없더라도 더위를 식힐 겸 휙 둘러보기 좋은 장소...라고 하면 너무 문외한 티를 내는 건가. 

커다란 석벽들을 지나서 가다보면 기다란 목조건물이 보인다. 요리키(與力·하급관리) 20명과 도신(同心·병졸) 100명이 주야를 불문하고 경호를 섰다는 햐쿠닌반쇼(百人番所). 


바로 혼마루(本丸) 쪽으로 올라간다. 눈 앞으로 광활한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그 뒤쪽으로는 거대한 돌담이 세워져 있다. 예전에 천수각(天守閣) 이 있었던 곳이지만 1657년 화재로 천수각이 무너진 뒤 토대만 재건됐다고 한다. 


나들이객과 관광객들이 여기저기에서 한가한 오후를 즐기고 있다. 잔디밭 주변을 빙 둘러싸고 있는 길을 따라 걷는다. 한낮의 햇볕을 충분히 가릴 수 있을 정도로 나무들이 울창하다. 감시대인 후지미야구라(富士見櫓)가 보인다. 좀 더 가다보면 무기고 역할을 했다는 후지미타몬(富士見多門)도 보인다. 이곳 창틀 사이로 보이는 곳은 일왕의 거처다. 


다시 길을 따라 걸어간다. 휴게실이 나오고 그 뒤쪽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면 전망대가 보인다. 전망대에선 푸른 나무숲 뒤로 마루노우치의 빌딩숲이 펼쳐지면서 기묘한 느낌을 준다. 


니노마루(二の丸) 쪽으로 걸어내려간다. 개발로 사라지고 있는 무사시노의 잡목림을 재현한 니노마루 잡목림이 보인다. 그 아래로는 스와의 찻집(諏訪の茶屋), 그리고 앞쪽으로 니노마루 정원이 펼쳐져 있다. 일본정원답게 빈 틈 없이 정갈한 느낌.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 오테몬으로 다시 나온다. 두 갈래 선택지가 있다.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황거의 상징인 니주바시(二重橋)를 볼 수 있다. 실제로 니주바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반대쪽으로 올라가면 다케바시(竹橋)다. 마이니치신문 건물이 보이고, 다케바시역이 나온다. 이곳에서 언덕길 쪽으로 도쿄국립근대미술관, 국립공문서관이 있다. 

도쿄국립근대미술관(MOMAT)은 1952년 개관한 일본 최초의 국립미술관이다. 원래 교바시에 있었지만, 1969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 


‘구룻도 패스’를 구입하면 국립근대미술관 상설전을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 구룻도 패스는 도쿄와 그 인근의 미술관이나 박물관, 동물원 등 80곳을 무료 또는 할인된 가격으로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이다. 지난 번 도쿄경마장을 가면서 들렀던 후추미술관도 구룻도패스를 이용했다. 

2000엔이니까 가성비가 꽤 높다. 단 기간은 2개월. 부지런히 발품을 팔면 절반 정도는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구입했는데 얼마만큼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입장료보다 교통비가 더 드니. 


국립근대미술관은 1만3000점의 소장작품 가운데 200점 정도를 전시한다. 20세기 이후 일본 미술 100년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미술관은 4층으로 올라가서 내려오면서 둘러보는데 첫 번째 전시실이 ‘하이라이트’실이다. 어떤 걸 우선 봐야할지 모르겠다는 관람객들의 요청에 따라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작품들을 위주로 전시하고 있다. 용을 타고 있는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그린 하라다 나오지로(原田直次郞)의 기룡관음(騏龍觀音)이 압도적이다. 


4층부터 2층까지 1900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 미술작품이 시대별로 전시돼 있다. 피카소나 앙리 루소의 작품 등 서양미술 전시실도 있다. 주변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사진 촬영도 가능하다.


4층에는 ‘전망좋은 방’이라는 게 있다. 의자에 앉아 빌딩숲을 배경으로 한 히가시교엔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별관격인 공예관도 내친 김에 가보려 했으나, 7월3일까지 내부 정비 때문에 휴관 중. 일전에 벚꽃 구경을 갔던 기타노마루(北の丸) 공원 근처에서 본 적이 있는데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근대 건축물이다. 예전에는 근위사령부청사였다고 한다.

 

공예관과 과학기술관, 부도칸 등에 인접한 기타노마루 공원은 시민들의 휴식처다. 인근 지도리가후치에서부터 이어지는 벚꽃길로도 유명하다. 

부도칸은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 뮤지션들도 자주 공연을 펼치는 일본 공연의 성지다. 1966년 비틀즈는 이곳 부도칸 공연을 통해 일본 팬들을 열광시켰다. 지난 4월 폴 메카트니가 이곳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때 아는 분과 부도칸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술을 마셨는데,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지라고 의아해하면서 술을 마셨던 적이 있다. 

그러고보면 비틀즈를 꽤 좋아했는데... 언제부터 그런 데서 멀어졌을까. 



Posted by fontif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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