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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통신

[도쿄 부라부라]가구라자카...뒷골목을 걸으면 다른 풍경이 보인다

 도쿄에 온 지 얼마 안됐을 때 가구라자카(神樂坂)를 잠깐 둘러본 적이 있다. 그리고 얼마전 가구라자카를 다시 찾아가 그 근처를 ‘부라부라’. 

 


 사실 가구라자카에 대해선 막연하게 와세다대 근처에 있는 유흥가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가구라자카는 한길과 뒷골목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곳, 도쿄의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공존하고 있는 곳이었다. 

 이다바시역(飯田橋)역에서 가구라자카역까지 이어지는 와세다길을 따라 늘어선 가게들. 모던한 레스토랑이나 빵집, 커피숍이 있는가 하면 일본 전통 차나 과자, 옷을 파는 고풍스러운 가게들도 있다. 

 게다가 한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납작한 돌이 촘촘하게 깔린 좁고 경사진 뒷골목이 나온다. 이곳을 헤매면서 아기자기한 가게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번잡한 한길과는 또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가구라자카라(神樂坂)라는 이름은 인근에 있던 신사에 미코시(가마)가 들어가는 행사가 열릴 때 가구라(神樂·일본 신도에서 연주하는 전통 가무)를 연주했다는 데서 유래했다. 

 ‘사카(坂·비탈길)’라는 단어가 붙은 데서 알 수 있듯이 가구라자카는 평평하지 않은 언덕길로 이뤄져 있다. 사실 도쿄 도심부 자체가 수많은 구릉 지대로 구성된 야마노테 대지 위에 있다고 한다. 도쿄 23구 내에 계단이 2500개 이상이라고 한다. 특히 그 중에서도 산책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사카’로 가구라자카가 꼽힌다. 가구라자카는 자동차 진행 방향이 오전과 오후에 바뀌는, 일본에서 유일한 역전식 일방통행로라고 한다. 


 가쿠라자카의 큰길을 따라가다 옆길로 슬쩍 들어가본다. 과연 이곳으로 차가 지나갈 수 있을까 싶은 도로에서부터 사람 한 명이 겨우 빠져나갈 정도의 좁은 길도 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아타미유(熱海湯)라는 낡은 목욕탕. 60년이 넘은 목욕탕이라고 한다. 그 옆으로는 돌계단이 나온다. 이 계단은 옛날에는 게이샤코미치(芸者小路)라고 불렸다고 한다. 가구라자카는 20세기 초반까지 게이샤 요정이 밀집된 지역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계단을 따라 내려오는 게이샤를 쉽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한때 100명 가까이 있었던 게에샤는 현재 20명 정도 있다고 한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보니 느낌 좋은 가게가 구석구석 자리를 잡고 있다. 계단을 빠져나오니 다른 골목길이 나오고 이 길은 큰길로 이어진다. 

 와세다길로 나와 반대쪽 골목길로 들어가본다. 프랑스 부르타뉴 지방의 음식과 비스킷을 판다는 가게가 보인다. 옆에선 이 가게에서 한다는 버터 비스킷과 캬라멜 가게도 있다. 부르타뉴 전통 음식 ‘갈레트’를 판다길래 기다려볼까 했는데 예약자가 너무 많다. 사실 혼자 들어가 먹는 것도 궁상맞기도 하고.


  가게를 지나 다시 아래쪽으로 이어진 계단을 따라가니 나처럼 ‘뒷골목 탐험’을 하고 있는 일본인들이 보인다. 이들을 따라간 곳에 일본 전통옷인 기모노와 함께 고양이 제품을 파는 ‘후쿠네코토(堂)’라는 가게가 있다. 가게 창문에선 ‘네코’(고양이)가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니 또다른 큰 길이 나온다. 큰 길 맞은편에는 나무들이 울창한 언덕이 보인다. 일본에선 이럴 경우 십중팔구 신사가 있다. 역시나 계단 위에는 신사의 상징인 도리이가 서 있다. 쓰쿠도하치만(築土八幡)신사라는 곳이다. 제법 오래된 듯한 계단을 올라가니 꽤 높다. 계단 옆에 마련된 미끄럼틀에서 남녀 2명씩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다. 


 다시 가쿠라자카로 돌아가기로 한다. 정갈한 돌길 양 옆으로는 꽤 비싸보이는 일본 전통 식당들이 조용히 들어서 있다. 계단 하나를 더 올라가니 사람이 서너명 들어갈까 싶은 바가 보인다. 그리고 그 앞에는 그야말로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길이 한길로 연결돼 있다. 


 다시 반대쪽 골목길로 들어가니 일본 전통 젓가락 등을 파는 가게가 있고, 그 옆에 커피 전문점이 있다. 특이하게도 커피 생두를 그 자리에서 볶아서 준다. 하나 사봤다. 커피콩이 볶아지는 걸 기다리는 것도 심심하지 않다. 가게 이름은 '미도리(綠)의 마메(豆)'. 볶기 전 커피콩이 녹색이니까 이런 이름을 붙인 모양이다.  


 가구라자카 ‘부라부라’의 끝은 라 카구(la kagu). ‘의식주+지식’을 컨셉트로 한 일종의 복합숍이라고 한다. 패션, 생활작품, 가구, 책 등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 건물 옆에는 출판사 신초사(新潮社)가 있다. 라 카구는 신초사의 창고였던 것을 세계적인 건축가 쿠마 겐고 사무실이 디자인했다고 한다. 창고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실내는 모던한 느낌으로 재창조해냈다. 


 사실 처음 가구라자카에 갔을 때 라 카구 앞 계단에서 막 피기 시작한 벚꽃을 보면서 잠시 동안 앉아 있었다. 하늘은 어느 때보다 푸르렀는데, 마음은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 반 불안 반이었던 것 같다.   

 그때였는지도 모르겠다. 틈날 때마다 도쿄 '부라부라'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