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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뉴스 깊이보기

‘아메리카 퍼스트’에 도전장 낸 ‘캘리포니아 가치’

1일 밤(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교(UC버클리) 캠퍼스에 학생 1500여명이 집결하고 곳곳에 불길이 타올랐다. 극우 매체 브레이트바트의 수석 편집장 밀로 야노풀로스(33)의 강연을 거부하는 목소리였다. 브레이트바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옹호하는 ‘대안우파’의 선봉에 선 매체다. 강연은 취소됐다. 트럼프는 트위터로 “UC버클리가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무고한 이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면… 연방 지원금 중단?”이라며 보복을 시사했다. 

 

Protesters rally against the Muslim immigration ban imposed by U.S. President Donald Trump at Los Angeles International Airport on January 29, 2017 in Los Angeles, California. (Photo by Amanda Edwards/Getty Images)


이민정책, 환경규제, 성소수자 권리 등 모든 면에서 진보의 가치를 내세워온 캘리포니아와 트럼프 정부의 전면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로스앤젤레스(LA) 연방법원은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을 잠정 금지했고, 주정부는 이민자 보호를 선언한 ‘성소 도시(Sanctuary City)’들에 연방재정 지원을 끊겠다는 트럼프 정부와의 법정 싸움을 예고했다. 주 전체를 성소로 만드는 입법도 진행 중이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와 ‘캘리포니아의 가치(Californian values)’ 충돌은 여러 이슈에서 갈등과 분열을 겪고 있는 미국의 현실을 보여준다.


■ “트럼프 행정명령 중지하라”

 

LA타임스는 LA연방법원이 연방 공무원들에게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을 집행하지 못하도록 잠정 금지시켰다고 1일 보도했다. 7개국에 포함된 예멘인 28명의 본국 송환금지 소송에서 안드레 비로테 판사는 원고들 편을 들어줬다. 비로테 판사는 이들 28명뿐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적용돼야 할 조치라면서 트럼프의 행정명령 이행을 잠정 중단하라는 긴급명령을 내렸다. 앞서 뉴욕 브루클린 연방법원이 7개국 국민의 본국 송환을 금지한 데서 더 나아가 적법한 비자만 있으면 7개국 국민이라도 입국할 수 있게 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지난달 31일 이민자를 규제하지 않는 도시에 연방재정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트럼프의 행정명령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소송을 연방법원에 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도 가세할 태세다. 자비에르 바세라 주 법무장관은 1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헌법은 연방정부가 주정부의 권한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바세라는 트럼프를 ‘가짜 조지 워싱턴 왕’에 비유했다. LA와 샌프란시스코 등 캘리포니아의 여러 도시들은 이민자 추방에 반대하는 ‘성소 도시’를 선언했다. 아예 캘리포니아 전체를 ‘성소 주(Sanctuary state)’로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다. 주정부가 연방이민법을 집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명 ‘캘리포니아 가치 법안’이 지난달 말 주의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 ‘캘리포니아 가치’를 지켜라

 

캘리포니아와 트럼프의 싸움은 예고됐다. 캘리포니아는 인구 3900만명 중 영어 사용자가 60%에도 못 미친다. 10명 중 3명은 히스패닉계고 중국계 등 아시아계 이민자도 많다.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에 직접 영향을 받는 주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240만명의 미등록 이민자가 있다. 구글, 페이스북 등 정보기술(IT) 기업들이 포진해 있어 지난해 총생산(GDP)이 세계 6위 규모로 프랑스나 인도보다도 많았다. 캘리포니아는 매년 연방정부에 4528억달러의 세금을 넘긴다. 

 

캘리포니아는 기후변화 대응에서 어느 주보다 앞서 있다. 태양광 전기 생산량은 나머지 미국 전체보다 많다. 주민 6.5%가 성소수자인 샌프란시스코 같은 도시는 성소수자 인권이 학교 교과목으로 채택됐을 정도다. 미국에서 가장 먼저 낙태와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주들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 힐러리 클린턴 지지율이 61.6%였고, 주의회에서도 민주당 의석이 3분의 2를 차지한다. 

 

그만큼 자신들이 추구해온 가치에 대한 자긍심도 높다. 민주당 소속의 제리 브라운 주지사는 지난달 24일 새해 연설에서 캘리포니아의 고유한 정책들을 적극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당선 뒤 주 하원의장과 국무장관은 반이민, 인종주의에 저항하겠다고 선언했다. 주의회는 트럼프 정부와의 법률 싸움에 대비, 지난달 4일 미국 최초 흑인 법무장관으로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일했던 에릭 홀더를 고문으로 영입했다. 

 

아예 연방정부에서 탈퇴하자는 ‘캘렉시트(Calexit)’ 청원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이란계 벤처투자가 셔빈 피셔바가 ‘예스 캘리포니아’라는 이름으로 연방 탈퇴 주장을 트위터에 올리자 열띤 호응이 뒤따랐다. 뉴스위크는 “지진 말고는 약점이 없는 캘리포니아와 트럼프의 싸움이 시작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