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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통신

[도쿄 부라부라]서늘한 개방감, 리쿠기엔... 그리고 노인들의 하라주쿠 '스가모'

하토야마 회관을 뒤로 하고 리쿠기엔(六義園)을 찾았다. 

리쿠기엔은 지난 주 찾았던 고라쿠엔(後樂園)과 함께 에도 2대 정원으로 꼽힌다. 에도막부의 5대 장군인 도쿠가와 츠나요시(德川綱吉)의 측근 야나기사와 요시야스(柳澤吉保)가 1702년에 완성한 지천회유식(池泉回遊式) 정원이다. 


리쿠기엔이라는 이름은 중국 한시의 분류법을 본떠 지어진 ‘고킨와카슈(古今和歌集)’의 서문에 나오는 일본 와카(和歌)의 6가지 기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정원은 현재의 와카야마(和歌山)인 기슈(紀州)의 풍경이나 와카에서 읊어지는 명승 88경을 표현했다고 한다. 1878년 미쓰비시의 초대 회장 이와사키 야타로가 이 정원을 구입했다. 1938년 도쿄 도에 기증하였으며, 1953년에 국가 명승지로 지정됐다. 

리쿠기엔은 고라쿠엔과 여러 모로 비교하면서 둘러보게 된다. 대문을 지나면 바로 앞에 벚꽃의 일종인 시다레자쿠라가 녹색 이파리를 잔뜩 매단 채 늘어서 있다. 4월에는 같은 자리에 연분홍 벚꽃이 잔뜩 매달려서 하나미(花見, 꽃구경)를 하려는 관람객들로 붐빈다고 한다. 


정원 중앙에 연못인 다이센스이(大泉水)가 있고, 그 가운데 인공섬을 조성한 것도 비슷하다. 한쪽에는 석가산을 쌓았다. 심지어 똑같은 이름의 도게쓰교(渡月橋)가 있다. 에도 시대의 정원은 대개 이런 양식인 지도 모르겠다. 

다만 고라쿠엔보다는 개방감이 더 느껴진다. 고라쿠엔이 도쿄돔과 빌딩들로 둘러싸여 있는 반면, 로쿠기엔 주변에는 높은 건물이 많이 없어서 활짝 열린 느낌을 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성큼 다가오고 있는 더위에 저항이라도 하듯 곳곳에 철쭉이 선명한 색깔을 발하고 있었다.  



교토 등 일본의 명승지를 축소해 본뜨고, 중국풍의 조경을 한 고라쿠엔에 비하면 조경물은 많지 않다. 대신 개울을 따라 나무들이 우거져서 숲길을 걷는 느낌을 준다. 

고라쿠엔보다 70여년 뒤에 만들어진 시대 상황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겠다. 리쿠기엔이 조성된 겐로쿠(元祿) 시대는 막부 체제가 비교적 안정돼 밝고 활기찬 문화를 꽃피웠다고 한다.  

리쿠기엔의 산책길을 따라 걸어간다. 이날 도쿄 기온은 27도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작은 개울과 각종 수목들로 조성된 산책길은 서늘한 느낌까지 준다. 개울을 건너기 위한 다리가 몇 군데 걸려 있는데 모두 흙으로 덮여 있다. 


쓰쓰지야에서 사람들이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쓰쓰지야는 메이지 시대 철쭉(쓰쓰지)의 목재를 이용해 만들어졌는데, 다행히 전쟁의 화를 피해 옛 모습이 남아 있다.


정원에서 제일 높은 석가산(山)으로 올라갔다. 연못을 중심으로 한 리쿠기엔의 조경이 눈 아래로 펼쳐진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나무들이 '쏴아쏴아' 소리를 내면서 가지를 한껏 흔든다. 조그마한 벤치에 계속 그대로 앉아 풍광을 바라보고 싶다. 같은 생각을 하는지 수염을 멋지게 기른 서양인 3명이 벤치에 한참 동안 앉아 있다. 


리쿠기인을 나와 '스가모(巢鴨)'로 향했다. 노인들의 하라주쿠(原宿)로 불리는 곳이다. 하라주쿠는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도쿄의 패션거리다. 스가모 지조도리(地臟通) 상점가는 노인들이 많이 몰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조도리 입구에는 차량통행 금지를 알리는 간판이 서 있다. 노인들을 위한 배려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 거리에는 도로 턱이 없다. 


약 1㎞ 가량 이어지는 지조도리에는 노인용 옷이나 신발, 건강식품, 전통차와 과자 등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노인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족 단위 관광객들도 적지 않다. 스가모가 알려지면서 나처럼 구경차 찾아온 사람들인 모양이다. 

 

다만 생각했던 것보다는 번잡하지는 않다. 지조도리를 찾은 시간이 토요일 오후 5시쯤이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도쿄나 지방도시의 시타마치(下町, 서민 상점가)와 크게 다른 점은 모르겠다. 오히려 그런 복고적인 느낌에 많은 이들이 몰리는 것일지도. 

스가모의 명물은 '빨간 팬티'다. 건강에 좋다는 속설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산다고 한다. 가게 전체가 빨간색 팬티로 진열돼 있는 게 신기하다. 


스가모의 캐릭터는 오리 '스가몬'이다. 가모(鴨)가 오리라는 뜻이니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거리 중간에 있는 우체통 위에도 스가몬이 보인다. 입구에는 오리 엉덩이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있다. 쓰다듬으면 좋은 인연을 만난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