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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통신

[도쿄 부라부라]경마장 가는 길...후추 미술관과 도쿄 경마장

이번 도쿄 부라부라는 조금은 색다른 곳이다. 

최근 주말마다 일본 정원을 돌아보게 됐는데 분위기를 바꿀 겸, 도쿄 중심가에서 전철로 50분 정도 떨어진 후추(府中)시를 찾았다. 

일본에서 우연히 알게 된 지인이 후추에 사는 데다 경마 전문 기자라 후추에 있는 도쿄경마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사실 지난주 일요일에 일본 경마에서 유명한 대회인 일본 더비가 열린다고 오라고 했는데 한 주 늦게 가게 됐다. 더비는 3세가 된 말이 경쟁하는 대회. "일종의 고교야구 결승전"이라고 지인은 설명했다. 일본에서 경마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열리는데 이번 주에도 '야스다 기념 G1'이라는 경주가 있다고 했다.  


약속시간까지 시간이 꽤 남아서 근처에 있는 후추 미술관을 찾아가기로 했다.  

히가시후추 역에서 내려 북쪽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후추 모리(森) 공원이 나온다. 미술관은 공원 위쪽에 자리잡고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건물이 후추 모리 예술극장이다. 이날 무슨 연주회가 있는지 같은 옷을 맞춰입은 사람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예술극장 바로 뒤가 도립 모리 공원이다.

공원으로 들어가면 숲길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나무들이 빽빽하게 도열해 있다.  

철쭉이 아직 남아 있는 좁은 길을 따라가면 연못이 나온다. 뙤약볕 아래에서 아이들이 오리에게 뭐라고 말을 하면서 장난을 치고 있다.

 

중앙 분수대에선 분수가 태양을 향해 기세 좋게 솟아오르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도는 가족 나들이객이 많다. 일부는 언덕 위에 자리를 깔고 누워 일광욕을 하고 있다. 


길게 늘어선 가로수를 통과하면 바로 후추 미술관이다. 

미술관 앞도 연못으로 꾸며져 있는 게 특이하다. 


미술관에선 아사노 다케지(淺野竹二, 1900~1999) 전이 열리고 있다.  

아사노 다케지는 교토 출신의 목판화가로, 초기에 일본 풍경을 담은 작품을 많이 발표하다가 후반기로 갈수록 단순하고 추상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다고 한다. 

일본 각지의 명소를 담은 채색 목판화를 보면서 교토나 나라 등 여행지에서 봤던 풍경을 찾아내는 재미가 솔솔하다.  

후기 작품은 형태가 보다 단순하고, 색은 선명하다. 상상력은 자유롭고, 표현은 유머스럽다. 아사노는 "산다는 것은 즐기는 것이다. 거기에는 자유가 없으면 안된다"라고 했다고 한다. 

상설전도 아사노 다케지 작품전에 맞춰 판화를 많이 배치했다. 모두 일본 작가 작품들이다.  


미술관을 나와 다시 분수대 쪽으로 걸어가는 길. 

아까 즐겁게 자전거를 타던 대여섯살짜리 여자아이를 다시 만났다. 울면서 아빠를 따라가고 있다. 더 놀고 싶은데 못 놀게 해서 그런 걸까. 

왔던 길을 택하지 않고 히가시후추역을 비껴서 도쿄경마장으로 향했다.  히가시후추역 다음 역이 후추경마정문앞 역이다. 

역 앞에 도착하니 전철에서 내린 수많은 인파들이 경마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황금 말 동상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지인을 만나 함께 경마장 안으로 들어갔다. 입장료는 200엔. 

경마장은 한국에 있을 때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사실 한국에선 경마는 도박이나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아 있다. 일본 경마는 부정 행위를 많이 없애는 등 이미지 개선에 성공해 국민 스포츠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하긴 전국에 파칭코가 1만여개가 넘는 일본이니 경마를 문제삼지는 않을 듯하다. 

지인은 과천 경마장도 몇 번 가보았는데, 전철이 사당역을 지나면 전철에 탄 사람들의 분위기도 뭔가 대결 모드로 변한다고 했다. 

도쿄경마장 안에는 여러 시설들이 있다. 경기장 한가운데는 아이들을 위한 승마체험장이나 놀이시설이 설치돼 있다. 경기에 들어가기 전 말들을 보여주는 작은 경기장도 있다. 여성전용 카페도 있다. 이들 여성 고객을 '우마조(馬女)'라고 한다나. 일종의 보고 즐기는 경마장을 지향한 것이다. 


스탠드에서 내려다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경기장이 훨씬 크다. 축구장 87배는 된다고 한다. 

대형 전광판에서 경기를 보여주는데 이날 간사이쪽의 한신경마장에서 열리는 경기도 번갈아 보여준다. 경기 시간대를 교차해서 도쿄에서도 오사카 경기를 보면서 마권을 살 수 있게 했다. 경주는 모래와 잔디로 나눠서 한다. 


이날의 하이라이트 야스다기념  G1. 

출전할 말들이 경기장을 돌자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경주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나오자 관중들이 맞춰서 박수를 친다.  

자, 스타트. 

스탠드에선 거리가 멀어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모두들 전광판을 보거나, 쌍안경을 하나씩 들고 있다. 

말들이 코너를 돌아 직선로로 들어오자 관중들이 환호를 지르기 시작한다. 'XX짱'이라고 자기가 응원하는 말들의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막판 스퍼트. 기회를 보던 말들이 치고 나온다. 관중석에선 ‘이케(달려)’ '이케'라는 소리가 터져나온다.  

이날 우승자는 14번 사토노아라진. 결승선에 머리 하나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들어왔다. 지인이 보여준 경마신문의 예상표에선 전문가 6명 가운데 사토노아라진을 1번 우승마로 추천한 전문가는 한 명도 없었다. 이 경주는 워낙 실력이 비슷비슷한 말들이 출전해서 예측하기 힘들다고 한다. 


처음 현장에서 경마를 봤는데 생각보다 꽤 재미있다. 특히 말들이 결승선을 향해 질주하는 마지막 몇 초 동안에는 가슴 졸이며 보게 된다.

사실 이날 지인이 가르쳐준 대로 재미삼아 500엔짜리 마권을 샀다. 8라운드 경주에선 우승 확률이 가장 높다는 말을 택했는데, 정말 이기는 바람에 배당을 2배로 받게 됐다. 그러나 야스다 기념 경주에서 그 돈으로 우승 확률이 높다는 두 말에 각각 걸었는데 모두 꽝. '갬블러' 기질이 별로 없는 나로선 그냥 좋은 구경했다는 기분. 


경마장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따라서 후추역 쪽으로 향했다. 

신사가 하나 나오는데 이름이 오쿠니타마, 즉 대국혼(大國魂) 신사라는 어마무시한 이름이다. 이 신사는 예전에 무사시국(武藏國)의 신들을 합사해 제사를 지내던 총신사였다고 한다. 


신사에서 후추역까지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이 서 있는 가로수 거리가 나온다. 

어딘가에서 마이크를 통해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우익단체가 거리선전이라도 하나 싶었는데, 요즘 한창 화제에 오르고 있는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거리연설을 하고 있다. 


오는 7월2일 도쿄 도의회선거에서 자신이 대표로 취임한 '도민퍼스트회' 후보를 뽑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아나운서 출신답게 연설이 쏙쏙 귀에 박힌다. 일하는 방식 개혁, AI 혁명 등을 얘기하면서 도쿄 도정 개혁에 몰두해온 자신처럼 새로운 마인드를 가진 젊은 개혁 후보를 뽑아달라고 말한다. 

연설을 듣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 박수를 치는 사람도 꽤 되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과연 '고이케 극장'의 기세가 도의회 선거까지 흔들지, 한 달이 채 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