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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1년 연기가 더 나아”...트럼프 발언에 ‘도쿄올림픽 연기론’ 급물살

 수면 아래에서 솔솔 나오던 ‘도쿄올림픽 연기론’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선언에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년 연기론’을 꺼내면서다. 대회 개최 여부를 결정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WHO 권고에 따르겠다”고 여지를 남기고 있다. 일본 정부는 중지·연기론의 진화에 애를 쓰고 있지만, 도쿄올림픽 정상 개최가 갈수록 어려운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도쿄올림픽 개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어쩌면 그들은 1년은 연기할 수도 있다”면서 “1년 늦게 연다면 무관중으로 치르는 것보다 더 나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게 이런 방안을 권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만 해도 도쿄올림픽 개최 여부에 대해 “아베 총리에게 남겨두려 한다”고 답을 유보했었다. “단순히 내 생각”이라고 했지만, 이날 그의 발언이 도쿄올림픽 연기론에 불을 붙인 모양새다. 11일 WHO의 팬데믹 선언으로 대회의 정상 개최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전망이 커지던 참이었다. 일본 내에서도 대회 연기에 대비한 논의가 나오기 시작하는 상황이었다. 다카하시 하루유키(高橋治之) 대회 조직위 집행위원은 10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올 여름 올림픽이 열리지 않는다면 1~2년 연기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라고 했다.
 도쿄올림픽 1년 연기론이 부상하는 것은 올림픽에 영향력이 큰 미국과 IOC의 사정을 감안한 것이다. 도쿄올림픽이 올 가을로 연기되면 미국프로풋볼(NFL) 등 미국의 인기 스포츠 이벤트와 겹치기 때문에 미국 방송사들이 난색을 보일 수 있다. IOC로서도 전체 수익의 73%를 차지하는 중계권 수입을 보전할 수 있다.
 일본으로서도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된다. SMBC닛코증권은 대회가 중지될 경우 6700억엔(약 7조7000억원)의 손실이 나온다고 전망했다. “중지보다 연기 쪽이 훨씬 낫다”(도쿄도 간부)는 것이다. 아베 총리로선 임기(2021년9월) 내 개최라는 명분은 유지할 수 있다. 한편 대회의 1년 연기를 위해선 올림픽 헌장의 개정이 필요하지만, 헌장 개정은 지금까지 누차 이뤄졌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도 이날 독일 공영 ARD방송과의 인터뷰에서 “IOC는 2월 중순부터 코로나19 문제와 관련해 WHO 전문가들과 정기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다”면서 “WHO의 권고를 따르겠다”고 말했다. WHO에 공을 넘기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올림픽 일정 변경의 ‘조건’을 처음 언급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연기나 취소는 일절 검토하고 있지 않다”(하시모토 세이코 올림픽 담당상) 등 관련 인사들이 일제히 나서 ‘1년 연기론’을 긴급 진화했다. 아베 총리도 이날 오전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회담에서 “올림픽 개최를 향해 전력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의 투명성 있는 노력을 평가한다”고 했다고 NHK는 전했다. 올림픽 연기나 무관중 개최 방안은 의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와의 전화 회담 후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도 “많은 옵션이 있다”고 언급, 올림픽 개최와 관련해 여러 선택지가 있음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일본 측에 ‘퇴로’를 열어줬다는 풀이도 나온다. 개최국인 일본이 먼저 대회 취소나 연기를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명분을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앞서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2일 “일본 정부 내에선 아베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를 살려 미국에도 유리한 1년 연기안을 공동 제안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안도 나오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