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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통신

[도쿄 부라부라]전후 일본 정치의 현장, 그리고 장미와 스테인드글래스...하토야마 회관

햇볕이 뜨거운 토요일 일본 도심을 ‘부라부라’. 

간다(神田)강에 걸린 에도가와(江戶川)다리를 건너 찾아간 곳은 하토야마(鳩山) 회관.


도쿄 분쿄(文京)구 오토와(音羽)의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서양식 건물. 구글 지도를 따라 언덕을 힘들게 올라갔더니 정문은 대로변에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할아버지 한 분이 힘겹게 자전거를 끌고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다. 


정문에서 경사로를 따라 올라간 곳에는 영국 빅토리아풍의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사슴과 비둘기 조각을 장식한 건물 정면이 인상적이다. 그 옆으로는 신록의 정원이 펼쳐져 있다. 

 

하토야마 회관은 54년간 일본을 통치해온 자민당 독주 체제를 무너뜨리고 2009년 총리에 오른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 집안의 저택이다. 하토야마 집안은 일본에서 유명한 정치가 집안이다. 증조부인 가즈오(和夫)는 중의원 의장에 와세다대 총장을 지냈고, 조부인 이치로(一郞)는 총리를 역임했다. 부친인 이이치로(威一郞)도 외무상을 거쳤고, 동생 구니오(邦夫)도 문부대신 등을 거친 중의원 의원이다. 

하토야마 회관은 하토야마 이치로가 1924년 지은 사택으로, 그의 친구였던 건축가 오카다 신이치로(岡田 信一郞)가 설계했다. 1996년 대규모 수복 공사를 통해 기념관으로 개관했다. 

하토야마 회관은 일본 전후 정치·외교 무대였다. 하토야마 이치로는 이곳에서 1945년 자민당의 전신인 일본자유당을 결성, 이른바 '55년 체제'가 등장했다. 지금 아베 정권은 개헌을 몰아붙이고 있지만, 1955년 진보정당들의 결집에 대항하기 위한 '보수대연대'로 탄생했던 자민당도 '개헌'을 명분으로 삼았다. 

이런 자민당을 무너뜨린 게 이치로의 손자인 유키오라는 게 극적이다. 물론 유키오가 이끌었던 민주당은 잇따른 실책과 동일본대지진 여파로 인해 정권을 내줬고, 지금 그 민주당을 이은 민진당은 침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층 응접실에선 이 회관의 관장인 하토야마 유키오가 직접 나와 설명하는 비디오를 틀어주고 있다. 유키오는 총리 시절 ‘우애’를 모토로 삼았는데, 이 말은 조부인 이치로가 제창했던 말이다. 

하토야마회관은 하토야마 이치로나 그의 부인이자 교육가였던 가오루, 이이치로의 유품들을 전시하는 기념실, 이치로가 수많은 정치가들과 환담을 나눴던 응접실, 영국풍의 선룸 등으로 이뤄져 있다.  

하토야마회관은 ‘장미와 스테인드글래스’의 저택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자리잡은 스테인드글래스가 특히 유명하다. 목조탑 위를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일본 풍경을 서양건축 양식인 스테인드글래스에 담은 게 인상적이다. 건물 여기저기에는 비둘기를 모티브로 한 스테인드글래스나 조각들이 눈에 띈다. 하토야마의 '하토'는 비둘기를 뜻하니 비둘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정원으로 나가보니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그 앞으로는 장미들이 활짝 피어있다. 그러고보니 5월은 장미가 한창일 때. 도쿄 여기저기에 장미를 쉽게 볼 수 있다. 장미 축제를 하는 곳도 많다. 이곳을 찾은 가족 단위 관람객들도 붉고 흰 장미를 배경으로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복잡한 일본 정치사를 제쳐두더라도, 하토야마 회관은 기분좋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오토와의 빌딩들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색다른 느낌을 준다. 다시 언덕길을 내려와 번잡한 거리로 돌아간다. 다음 목적지는 같은 분쿄구에 있는 일본 정원 고라쿠엔의 상대라 할 만한 리쿠기엔(園)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