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팅, 쇼핑몰팅, 암흑팅, 농촌팅. 일본의 ‘고콘’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고콘은 흔히 말하는 미팅, 혹은 맞선을 가리킨다.
최근 인기를 끄는 ‘구라야미(암흑)콘’은 안대로 눈을 가리고서 하는 미팅이다. 참가자들은 모습이 보이지 않는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면서 ‘운명의 짝’을 찾는다. 11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지난달말 도쿄 세타가야에서 이벤트회사 주최로 ‘암흑미팅’ 이벤트가 열렸다. 남성과 여성 참가자 3명씩 안대를 한 채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대화를 나눴다. 참가자들은 도중에 안대를 벗으면 안 되고, 미리 정해진 ‘가명’으로만 상대를 부르는 게 규칙이다. 갑자기 일어서도 안 되며 음식이 뭔지 알아도 말해선 안 된다.
참가자들은 목소리나 대화 내용, 말하는 태도, 악수할 때의 자세 등으로 자신과 맞는 상대인지를 판단한다. 외면보다 내면에 집중해 결혼 상대를 찾자는 이유에서다. 벌써 여러 번 진행된 암흑미팅 행사의 참가자들 중에는 상대에게서 “좋은 냄새가 나서 왠지 모르게 좋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이벤트 마지막에는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투표를 했다. 서로 마음이 통한 남녀는 연락처를 교환할 수 있지만 ‘사랑의 화살표’가 어긋났으면 서로 얼굴 볼 일은 없다. 한 남성 참가자는 “외모에 자신이 없어도 참가할 수 있다”고 했고, 여성 참가자는 “긴장되긴 했지만 평소보다 더 말을 많이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주최 측은 “진지하게 연애 상대를 찾는 사람도 있고, 이벤트 자체를 즐기면서 마음 맞는 상대를 찾으려는 참가자도 많다”고 말했다.
‘마치(街)콘’ 즉 길거리 미팅은 일본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으며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마치콘은 거리 전체에서 열리는 대형 미팅 이벤트로, 남녀 커플이 한 조가 돼 음식점을 돌아다니면서 미팅을 한다. 2004년 도치기현 우쓰노미야 시가 상권을 활성화하기 위해 처음 열었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뒤 전국으로 퍼졌다. 전국의 마치콘 일정을 알려주는 사이트까지 생겼다. 한국의 ‘신촌 솔로대첩’ 이벤트도 여기서 아이디어를 따온 것으로 알려졌다. 마치콘은 최근에는 음식점 하나를 통째로 빌리는 ‘가게 미팅’, 쇼핑몰을 활용하는 ‘몰 미팅’ 등으로 다양해졌다.
귀농·귀촌을 장려하기 위한 미팅도 있다. 모내기나 벼 베기같은 농촌 체험을 하면서 마음에 맞는 상대방을 찾는 ‘노(農)콘’이다. 지방자치단체나 농협 등은 이렇다할 연고가 없는 지방으로 이주하려는 남녀를 대상으로 이런 ‘농촌미팅’을 주선한다. 일본에선 연고없는 곳으로 이주해가려는 ‘I턴’이 늘고 있다. 노콘 참가자들은 함께 채소를 수확해 요리를 하며 대화를 나눈다. 거둬들인 채소를 가져갈 수도 있다.
와카야마현 가이난의 한 목장에선 오는 8월 ‘무당벌레의 사랑’이라는 이름의 농촌미팅을 개최한다. 목장 체험과 함께 바베큐를 즐기면서 미팅을 하는 행사다. 결혼 상대를 찾아 귀농까지 결정하면 지자체로부터 지원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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