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에게 말 걸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매장을 찾거나 택시를 타는 손님에게 말을 걸지 않은 ‘무언(無言)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조용히 쇼핑을 하거나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다는 고객들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서다.
7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의류 브랜드 ‘어반 리서치(Urban Research)’는 지난달 19일부터 일부 매장 입구에 ‘말 걸 필요 없음’ 가방을 배치했다. 이 파란색 가방을 든 손님에겐 점원이 다가가 말을 거는 일이 결코 없다. 원래 고객이 구입하거나 입어보고 싶은 제품을 넣는 가방을 색깔을 구별해 활용한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를 도입한 이유는 “자신의 속도로 쇼핑을 하고 싶다” “점원이 말을 걸면 오히려 긴장한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다 알아보고 왔다” 등 고객들의 불만이 높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쇼핑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가 “접객을 바라는 게 아니다”라는 점도 고려됐다.
게다가 점원들이 모든 손님들에게 말을 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실제 이 가방을 배치해본 결과, 점원은 도움을 요청하는 손님에게 집중할 수 있어 효율을 높이고 매출도 올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여론조사에서도 찬성이 80%에 이르렀다. 다만 “그럼 점원은 뭘 하냐” “애당초 말 걸어주길 바라는 고객을 가리는 점원의 실력을 키우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의견도 나온다.
어반 리서치는 현재 매장 22곳에서 시범 운영하고 있는 이 제도를 더욱 확대할지 조만간 검토할 예정이다.
교토(京都)에는 택시 기사가 손님에게 말을 걸지 않는 ‘사일런스(Silence·침묵) 차량’이라고 하는 택시가 시내를 달리고 있다 .
교토시에 본사를 둔 ‘미야코(都) 택시’는 지난 3월말부터 10대의 ‘사일런스 차량’을 전국 최초로 시범 운행하고 있다. 택시 조수석 뒤에는 ‘운전수가 말을 거는 것을 삼가고 조용한 차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라는 설명문이 붙어 있다. 택시 기사는 △인사할 때 △목적지를 물을 때 △계산할 때 △손님의 질문에 답할 때를 제외하곤 잡담 금지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지난 2월 아이디어 발표회에서 영업담당자가 “경기가 안 좋다”라고 말을 걸어오는 택시기사에게 맞장구치는 게 귀찮았던 경험을 얘기한 게 이 택시를 도입하게 된 계기가 됐다. 실제 인터넷상에는 택시기사가 말을 거는 것에 대해 “버블 시대 이야기는 필요 없다” “경기가 안 좋다 같은 부정적인 얘기는 싫다” 등의 의견이 많이 발견됐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손님이 많아서 운전수와의 대화를 귀찮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라는 점도 고려됐다.
택시기사와 손님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솜씨좋게 교토를 소개하는 ‘접대’를 중요시하는 택시기사는 불만이다. 손님으로부터 붙임성이 없다고 받아들여진다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택시 기사 자신도 다른 택시를 타면 조용하게 목적지까지 가고 싶어 하지 않냐”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 회사에는 “교토에 가면 꼭 이용해보고 싶다” “그런 서비스를 원했다” 같은 긍정적인 평가를 담은 메일이나 전화도 수십통 왔다고 한다. 쓰쓰이 모토요시(筒井基好) 사장은 NHK에 “지금까지는 대화를 통해 손님을 접대하는 게 제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에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사일런스 차량은 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 같이 ‘무언 서비스’의 확산을 두고 고객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중시하는 일본 특유의 접객 서비스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의 직접적인 유대가 점점 희박해지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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