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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김진우의 도쿄 리포트

헤이트스피치 억제법 1년... 차별을 없애기 위한 머나먼 길

 “배외주의적 공격에 대한 무관심, 이지메(괴롭힘)를 못본 척하는 게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거리를 걸어다니고 싶다, 하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3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재일 한국YMCA에선 헤이트스피치(증오발언)억제법 시행 1년을 기념하는 집회가 열렸다. 차별에 괴로워하는 마이너리티, 그리고 이들과 함께 싸워온 외국인인권법연락회 등 시민단체들이 지난 1년을 되짚고 향후 과제를 고민하는 자리였다. 참가자들은 이번 법이 심각한 인종차별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던 일본 정부가 처음 내놓은 대책이라는 데 의의를 뒀다. 실제로 법 시행 후 우익단체 시위는 줄어들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법 시행 후 지난 4월까지 우익단체의 시위는 35건으로, 지난 해 같은 기간의 61건에 비해 감소했다.


 하지만 집회 신청이 필요 없는 거리선전은 그만큼 줄지 않았다. 아케도 다카히로(明戶隆浩) 간토가쿠인대 강사는 “거리선전은 195건으로, 지난 해 같은 기간의 234건에 비해 그리 많이 줄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일본인을 살해해온 ○○인”처럼 위협을 먼저 가해온 게 상대방이라는 ‘정당방위’ 뉘앙스를 사용하거나 “소멸시키자” 대신 “(재일한국·조선인 등에게 영주권을 주는) 입관특례법 폐지”처럼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인터넷이다. ‘사형’ ‘사살’ ‘살처분’ ‘기생충 구제(驅除)’처럼 거리 시위나 거리 선전에서 피하는 잔혹한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외국인이 관련된 범죄사건 기사에는 어김없이 이런 댓글이 달린다. 김명수 간사이가쿠인대 교수는 “인터넷상의 헤이트스피치 때문에 한국·조선 국적의 40%가 인터넷 이용 자체를 피하고 있고, 프로필에 자신의 출신을 쓰지 않는다”면서 “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헤이트스피치억제법은 일본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을 없애기 위해 지난해 6월3일 시행됐다. 지자체 단위에서 제도를 보완하고 있지만 아직 미흡하다. 아케도는 “법무성은 선동의 범위를 ‘쫓아내자’처럼 직접적인 것으로 한정하고 있지만 유럽에선 특정집단의 위협이나 위험성을 부채질하는 듯한 발언도 선동에 포함시킨다”며 “프랑스에선 ‘무슬림이 이 나라의 지배자’ ‘외국인의 침략을 받고 있다’는 발언을 한 이들이 모두 유죄 판결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상이 헤이트스피치만이라는 점도 한계다. 지난 3월 발표된 법무성의 외국인주민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재일 외국인의 40% 정도가 살 집을 구하는 데에서 차별을 겪었고, 25%는 취업 차별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주택 입주나 취업에서의 차별은 국제사회가 금지하는 중대한 차별인데 일본에는 관련 법률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법은 ‘일본 외 출신’에게만 적용된다. 하지만 홋카이도 원주민인 아이누나 오키나와 사람들에 대한 차별도 만만치 않다. 이날 연단에 선 기타가와 가오리는 “‘아이누 사람들은 겉모습으론 알 수 없으니 DNA 감정을 해야 한다’거나 ‘아이누가 멸종되게 놔뒀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않게 한 일본 정부가 대단하다’는 식의 헤이트스피치가 널리 퍼져 있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오키나와 류큐신보의 아라카키 쓰요시 기자는 “경찰이 오키나와인을 ‘토인’이라고 말했는데도 일본 정부는 차별적인 발언이 아니라고 했다”면서 “헤이트스피치가 퍼지다 보면 헤이트크라임(증오 범죄)이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이 법이 제대로 이행되려면 정부 차원의 실효성 있는 대책과 함께 인종차별철폐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모로오카 야스코 변호사는 “정부와 지자체는 국제 인권법에 합치하는 인종차별 철폐정책을 만들고 법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면서 “법무성이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인권대국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그러려면 연내에 인종차별철폐기본법을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