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엔과 일본 정부의 관계가 미묘하다. 유엔 특별보고관이 일본 국내문제에 대해 잇따라 우려를 표명하자 일본 정부가 대놓고 반박하고, 한일 위안부 합의를 유지하기 위해 ‘여론 호도’를 서슴지 않으면서다. 급기야 유엔 측이 “위안부 합의에 동의한 적 없다”고 진화에 나서는 일까지 벌어졌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28일(현지시간) 논평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 합의에 따라 해결할 사안이라는 데 동의했다”면서 “구체적인 합의 내용이 아니라, 위안부 해법의 본질과 내용을 규정하는 것은 양국에 달렸다는 원칙에 동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외무성은 구테흐스 총장이 지난 18일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와 회담하며 “위안부 합의를 지지하고 환영한다”고 말했다고 발표했다.
두자릭 대변인은 또 “특별보고관은 독립적인 전문가로 유엔 인권이사회에 직접 보고한다”고 밝혔다. 일본은 특별보고관의 우려 표명에 항의를 했고 구테흐스 총장도 항의에 공감했다는 듯이 발표했는데, 두자릭 대변인은 이 또한 부인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면담 내용을 호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게 됐다.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 분담금 지급을 보류하면서 유네스코의 난징(南京)대학살 자료 등재에 반발하고, 한일 위안부 자료의 심사 및 등재를 막아왔다. 유엔 인권최고기구 산하 고문방지위원회가 한일 위안부 합의를 개정하라고 권고한 것에 대해서도 “개정할 필요가 없다”는 반론문을 제출했다. 국제무대에서 국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외교전을 펼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일본의 외교전에는 위안부 문제 등 보편적 인권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빠져 있다.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반인도 범죄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적극적으로 과거사를 반성하고,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데 앞장서는 일이다.
일본 내 인권·민주주의 상황에 대해 유엔 특별보고관들의 우려가 잇따르고 있는 점도 되새겨볼 대목이다. 유엔은 ‘감시사회’ 논란을 일으킨 공모죄 법안,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운동을 해온 시민운동가의 장기 구류, 언론 통제 등을 두고 인권과 표현의 자유 침해를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이런 우려를 되레 반박하고 있다. 심지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표현의 자유 침해를 우려한 특별보고관의 서한에 대해 “무언가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라고까지 했다.
일본은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이다. 북한 납치 피해자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왔다는 이유로 특별보고관에게 국가훈장을 준 적도 있다. 다니구치 마유미(谷口眞由美) 오사카국제대학 부교수는 전날 TBS 방송에 나와 일본 정부가 “두 개의 혀”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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