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사진)가 지난 28일 재임 1981일을 맞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를 제치고 전후 세 번째 ‘장수 총리’가 된 것이다. 아베 총리가 내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3선에 성공할 경우 2019년 8월에는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전 총리(2798일)를 제치고 전후 최장수 총리에 오를 수도 있다.
실제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이고, 강력한 장악력으로 당내에 반대 목소리가 없으며, 제1 야당인 민진당이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최장수 총리’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아베 총리와 측근들의 최근 언행에선 ‘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는 자신감이 배어나온다. 잇따르는 망언과 독선에선 오만함까지 엿보인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는 가케(加計)학원 스캔들 대응도 마찬가지다.
이 스캔들은 아베 총리가 친구가 이사장으로 있는 가케학원이 수의학부 신설 허가를 받도록 힘을 쓴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지난 17일 폭로된 정부 문건에는 총리실을 담당하는 내각부가 가케학원 수의학부 신설에 대해 문부과학성 측에 “관저 최고위층의 의견” “총리의 의향”이라고 압력을 가한 내용이 담겼다. 26일에는 마에카와 기헤이(前川喜平) 전 문부성 사무차관이 기자회견을 열고 “문서는 확실히 존재한다. 있었던 일을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고 폭로했다.
문제는 아베 정부의 대응이다. “괴문서” “출처를 알 수 없어 신빙성이 없다”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심지어 마에카와 전 차관의 도덕성 문제를 부각시키는 식으로 스캔들을 덮으려 하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마에카와 전 차관이 문부성 퇴직 관료들의 취직 알선 문제로 지난 1월 사직한 것을 두고 “스스로 사임하지 않고 지위에 연연하며 매달렸다”고 비판했다. 마에카와 전 차관이 유흥업소에 출입했던 사실도 거론했다.
이번 스캔들의 핵심은 가케학원의 수의학부 신설에 아베 총리의 의향이 작용했는지, 아니면 내각부가 ‘총리의 의향’을 핑계삼아 문부성의 ‘신중론’을 눌렀는지다. 아베 정부는 이에 대해선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관료사회의 ‘손타쿠(忖度·알아서 기다)’ 현상만 두드러진다. 문부성은 자체 조사 결과 앞서 폭로된 내부 문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정작 관련 직원들을 대상으로 컴퓨터의 문서 삭제 이력을 조사하지는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바다에 가서 잉어가 잡히지 않는다고 ‘잉어는 없다’고 말하는 논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스캔들은 한국의 몇 가지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첫째는 ‘정윤회 문건’ 사건이다. 지난 2014년 최순실씨의 전 남편 정윤회씨가 국정에 관여한다는 내용의 청와대 유출 문건 파동을 말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시 “문건 내용은 찌라시 수준”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용에 다소 차이가 있어도 최씨 일가가 박 전 대통령과 국정농단을 해왔다는 것은 추후 드러났다. 둘째는 ‘채동욱 낙마’ 사건이다. 2013년 검찰의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방패막이였던 채동욱 검찰총장은 조선일보의 ‘혼외자식’ 보도로 결국 사임했다. 이번 가케학원 스캔들에선 ‘괴문서’라는 말이 등장한다. 마에카와 전 차관의 유흥업소 출입 문제는 보수신문인 요미우리신문이 단독 보도했다.
요즘 아베 정권이 밀어붙이는 ‘테러 등 준비죄’(공모죄) 법안을 두고 지난해 한국에서 야당의 기록적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낳았던 테러방지법 논란의 ‘일본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일 평행이론’ 얘기도 들려온다.
아베 총리 주변에선 ‘최장수 총리’ 등극은 시간 문제로 보는 모양이다. 하지만 ‘아베 1강(1强)’의 뒤틀린 인식이 어느 틈에 파열음을 낼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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