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17일 내년 대학 입시에 도입할 예정이던 국어·수학의 서술식 문제를 보류하기로 했다. 영어 민간시험 도입 보류에 이어 새 대입 제도의 또다른 축인 국어·수학의 서술식 문제마저 ‘백지화’하는 이례적인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일본에서 30년 만에 추진된 대학 입시 개혁이 사실상 알맹이가 빠진 개혁이 됐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문부과학상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 1월부터 시작하는 대학 입학 공통 테스트(한국의 수학능력시험과 비슷)에 국어·수학 서술식 문제를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일본에선 매년 1월 50만명 이상의 수험생이 참가하는 대입 센터 시험이 내년부터 대입 공통 테스트로 바뀌고, 영어에는 민간시험이, 국어와 수학에는 서술식 문제가 각각 도입될 예정이었다.
서술식 문제는 사고력이나 판단력, 표현력을 측정하려는 목적으로, 대학입시센터가 ‘국어’와 ‘수학Ⅰ’, ‘수학Ⅰ·A’에서 문제를 내고, 민간회사인 베네세그룹 학력평가연구기구가 8000~1만명의 채점자를 동원해 채점을 실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서술식 문제 도입에 대해선 채점에 불균형이나 실수가 발생하고, 수험생의 자기 채점이 어려워 지원 대학을 고르는 데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 등이 제기돼왔다. 이 과정에서 채점자 가운데 학생 아르바이트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채점의 공정·공평성에 대한 의문이 커졌고, 베네세그룹이 채점자인 사실을 밝힌 뒤 고등학교에 자사의 모의시험 등을 소개하는 자료를 배포한 것이 밝혀지면서 문부과학성이 항의하는 사태도 일어났다.
문부과학성은 개선책을 협의해 왔지만, 교사 출신들로 채점단을 구성해 채점의 정밀도를 높여도 실수의 가능성이 남고, 자기 채점과 채점 결과의 불일치를 크게 개선하는것은 곤란하다 등의 의견이 제시됐다. 이에 “수험생이 안심하고 시험을 치를수 있는 체제를 조기에 마련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판단해 도입을 단념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 문부과학성은 대신 각 대학의 개별 선발시험에서 서술식 문제를 적극 활용해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다.
앞서 문부과학성은 지난달 대입 공통 테스트에 도입이 예정됐던 영어 민간시험 실시도 보류하기로 했다. 수험생의 거주 지역이나 경제적 상황에 따라 기회의 불평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된 데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측근인 하기우다 문부과학상이 “분수에 맞추면 된다”는 발언이 불안한 민심에 기름을 부은 때문이다.
일본에서 1990년 1월 이후 대학 입시 센터 시험이 실시돼왔다. 이번 대학 입학 공통 테스트는 30년 만의 대학 입시 개혁이었지만, 영어 민간시험과 서술식 문제라는 두 핵심 제도가 모두 보류되면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게 됐다고 NHK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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