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던 대학 입시용 영어 민간시험을 보류하기로 했다. 영어 민간시험이 경제·지역 격차를 심화시킨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가운데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문부과학상의 “분수에 맞추면 된다”는 발언이 불안한 민심에 기름을 부은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기우다 문부과학상은 이날 대학입학공통테스트(한국의 수학능력시험과 비슷)에서 영어 과목 시험 대신 도입하려던 영어 민간시험을 보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경제 상황이나 거주 지역에 관계없이 동등하게 안심하고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배려하는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면서 민간시험 활용이 타당한지를 포함해 제도를 원점에서 논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024년도를 목표로 새로운 제도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날 영어 민간시험에 필요한 공통 아이디(ID) 신청이 시작될 예정었는데 돌연 백지화를 발표한 것이다.
영어 민간시험은 6개 단체가 시행하는 토플(TOFLE) 등 7가지 시험 성적을 대학 입시에 반영하는 제도다. 4∼12월의 시험 결과를 최대 2회까지 정부의 영어성적 제공시스템에 등록해 합격 판단 등에 사용하는 방식이다. 문부과학성은 2017년 5월 영어 민간시험의 활용을 포함한 대학입학공통테스트 실시 방안을 공표하고, 시험 단체 등과 협정 체결 등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영어 민간시험을 두고는 시험장이 도시에 집중돼 있고 응시료가 비싸서 거주 지역이나 학생의 경제적 상황에 따라 기회의 불평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됐다. 대학에서도 난이도가 다른 시험을 합격 판정에 사용하는 것은 어렵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 때문에 내년도 입시에서 영어 민간시험을 활용하겠다는 대학은 60%에 머물렀다.
영어 민간시험 도입의 연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전국고교교장협회는 지난 9월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다”며 도입 연기와 제도 설계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요망서를 문부과학성에 제출했다. 야당도 “지방의 소득이 낮은 가정의 아이들이 영향을 받는 제도”라면서 도입의 연기를 요구했고, 정부나 여당 내에서도 “정책적으로 결함이 있다”며 연기 의견이 나왔다.
다만 문부과학성은 “실시를 연기하면 준비를 진행해온 대학이나 고교의 반발을 부른다”고 실시 연기에는 소극적이었다. 하기우다 문부과학상도 그대로 강행하겠다는 뜻을 수 차례 밝혔다.
하지만 자신의 발언이 논란에 불을 지피면서 결국 시행을 보류하게 됐다. 그는 지난달 24일 위성방송 ‘BS후지’에 출연해 “부유한 가정의 아이가 여러 번 시험을 쳐서 워밍업을 하는 식의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신분에 맞게 두 번을 제대로 골라서 노력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에 교육격차를 당연시하는 발언이라는 비판이 쇄도했고, 하기우다 문부과학성은 발언을 철회하고 수 차례 사죄했다. 하지만 사태가 수습되지 않았다. 결국 이날 논란의 원인 제공자인 하기우다 문부과학상이 시험을 보류하겠다는 발표를 하는 상황으로 몰렸다.
최근 경제산업상과 법무상이 잇따른 스캔들로 낙마하고, 일부 각료의 막말 발언으로 구석에 몰린 아베 정권의 상황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성난 민심을 아랑곳 않고 밀어붙이다가 자칫 정권 운영에 직격타를 맞을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음직하다.
야당은 이 문제를 계속 추궁할 태세다. 입헌민주당 등 4개 야당은 이날 긴급 회동을 갖고 하기우다 문부과학상의 사임을 요구하고, 아베 총리의 임명 책임을 추궁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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