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히토(德仁) 일왕의 즉위 선포식인 ‘즉위례 정전의식’이 22일 치러졌다. 지난 4월1일 새 연호 ‘레이와(令和)’ 발표 때부터 6개월간 이어져온 일왕 즉위 관련 행사가 절정에 이른 것이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면서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행사가 진행됐다. 태풍 ‘하기비스’ 피해를 이유로 도심 카퍼레이드는 다음달 10일로 미뤄졌다.
일왕 즉위 행사를 두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정치적 이용이 두드러졌고, 전전(戰前) 천황제의 잔영을 지우지 못한 탓에 헌법 위반 논란도 재연됐다.
■ 빗속에 치러진 즉위 의식
나루히토 일왕은 이날 오후 1시10분쯤 왕궁 내 접견실인 마쓰노마에 놓인 ‘다카미쿠라(高御座)’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종소리에 함께 보라색 장막이 걷혔다. 헤이안(平安) 시대(794~1184년)부터 이어져왔다는 전통복장인 갈색 ‘고로젠노고호’를 입은 모습이었다. 그 옆 미초다이(御帳台)에선 여성 전통복장인 주니히토에(十二單)를 한 마사코(雅子) 왕비도 등장했다.
나루히토 일왕은 ‘즉위 소감’에서 부친인 아키히토 전 일왕을 언급하면서 “국민 행복과 세계 평화를 항상 바라며 국민에게 다가서면서 헌법에 따라 일본국과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임무를 다할 것을 맹세한다”고 말했다. 부친의 ‘평화주의’ 노선을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읽혔다. 다만 부친이 언급했던 “헌법 준수” 표현까지는 나오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축사에서 “사람들이 아름답게 마음을 모으는 가운데 문화가 태어나고 자라는 시대를 만들겠다”고 했다. 새 연호 ‘레이와’의 뜻풀이를 담은 것으로 보이지만, ‘새 시대=개헌’ 논리를 설파해온 것과 무관치 않다. 아베 총리는 “천황폐하 만세”라고 만세 삼창을 했고, 국내 참석자들이 복창했다. 인근 공원에선 21발의 예포가 발사됐다.
도쿄에는 새벽부터 비가 내리고 가끔씩 강한 바람이 불었다. 때문에 일부 의식은 축소됐다. 당초 마쓰노마 앞 중정(中庭)에 도열할 예정이던 헤이안 시대 복장의 78명이 실내로 들어가면서 깃발만 남았다. 왕궁 앞에서는 이날 오전 8시쯤 나루히토 일왕이 거처인 아카사카고쇼(赤坂御所)에서 고쿄로 향하는 차 안에서 손을 흔들자 일부 시민은 “반자이(만세)”를 외치기도 했다. 저녁에는 축하연인 ‘향연(饗宴)의식’이 열렸다. 일본 정부는 이날 즉위 의식을 맞아 55만명을 특별사면했다.
■ 재연된 위헌 논란
국민주권과 정교분리 등 헌법 위반 논란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신화에 기반한 ‘다카미쿠라’에 일왕가의 상징인 ‘삼종신기’ 중 검·옥을 두고 총리 등 3부 수장을 내려다보면서 일왕이 즉위를 선언하거나 총리가 일왕을 향해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는 것 등은 “헌법의 국민주권과 정교분리 원칙과 양립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여전하다.
다음달 14~15일 실시되는 추수 감사의식인 ‘다이조사이(大嘗祭)’도 종교색이 짙은 의식으로 정교분리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일본공산당은 이번 즉위 의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아베 정권이 일왕 즉위 분위기에 편승하면서 국내 논란거리로부터 국민의 시선을 돌리고 개헌을 추진하는 등 일왕을 정치적으로 활용해왔다는 비판도 나왔다. 아베 총리는 지난 4월1일 새 연호 발표 당시에도 직접 마이크를 잡고 ‘새 시대, 새 일본’을 강조하면서 ‘일하는 방식 개혁’ 등 간판정책을 선전했다. 새 연호를 처음으로 일본 고전에서 유래한 글자로 정한 것도 일본 정체성을 강조하려는 아베 총리 의향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아베 총리는 ‘레이와 새 시대’와 ‘개헌’을 연결짓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 4일 소신표명연설에서 “레이와 시대에 일본이 어떤 국가를 목표로 해야 할 것인가. 그 이상을 논의해야 할 장소야말로 헌법심사회”라면서 개헌 논의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일본공산당 위원장은 “천황(일왕)과 연호가 바뀐 것과 헌법 개정은 아무 관계가 없다”면서 “천황제에 대한 최악의 정치 이용”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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