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 선포식 ‘즉위례 정전의식’에는 전쟁과 핵무기 없는 세상을 호소해온 여고생 등이 초대됐다. 부친 아키히토(明仁)의 ‘평화주의’ 계승 의지를 밝혀온 나루히토 일왕이 ‘전쟁 가능한 국가’로 나가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다른 결을 보여준 것 아니냐는 풀이가 나온다.
24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이번 행사에는 오키나와(沖繩)현 나하(那覇)시의 고교 1년생 사가라 린코(相良倫子·15)가 교복 차림으로 참석했다.
사가라는 지난해 6월23일 ‘오키나와 위령의 날’에 열린 전몰자추도식에서 ‘평화의 시’를 낭독해 주목을 모았다. 사가라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주민 9만4000명을 포함, 총 20만명이 목숨을 잃은 오키나와에서 살아남은 증조할머니를 생각하면서 쓴 시에서 “분명히 알 것이다. 전쟁의 무의미함을. 진정한 평화를. 전력(戰力)이라는 바보같은 힘을 갖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평화는 진짜 없다는 것을”이라고 했다. 아베 총리가 참석한 추도식에서 낭독한 이 시는 전쟁 포기와 전력 보유 금지를 명문화한 헌법 9조를 고쳐 ‘전쟁가능한 국가’로 나가려는 아베 정권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혔다. 게다가 오키나와는 미군기지의 헤노코 이전을 두고 아베 정부와 대립을 이어오고 있다.
반면 나루히토 일왕의 부친인 아키히토는 왕세자 시절을 포함해 11차례나 오키나와를 방문하는 등 오키나와에 다가가는 자세를 보여왔다. 나루히토 일왕도 일본의 패전일(종전일)인 지난 8월15일 부친과 마찬가지로 “깊은 반성”을 언급하면서 평화주의 노선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왔다. 사가라는 일왕의 즉위 소감에 대해 “상왕(아키히토)의 생각을 이어갈 것이라는 기분이 전해져왔다”고 밝혔다.
전날 행사에는 히로시마 원폭 피폭자로 캐나다에 사는 사로 세쓰코(87)도 참석했다. 그는 핵무기 폐지 운동으로 201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비정부기구(NGO) 연합체인 ICAN의 활동가다.
일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무기 피해을 입은 국가이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핵 우산’에 의존하고 있어 핵무기금지협약 서명을 거부하고 있다. 사로는 지난 2월 일본을 찾았지만, 아베 총리와의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세계 평화를 요구한다면 피폭자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였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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