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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김진우의 도쿄 리포트

오염된 ‘원전 머니’...일본 ‘원전 마을’ 실태 드러낸 금품 사건

 일본 원전업체 임원들이 원전이 위치한 지역 유지로부터 장기간 거액의 금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원전 재가동을 추진하는 전력회사와 원전이 입지한 지방자치단체의 왜곡된 유착 관계뿐 아니라, 오염된 ‘원전 머니’와 이에 재정을 의존해온 ‘원전 마을’의 실태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이후에도 원전 재가동을 추진 중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이번 사건이 재가동 노선에 지장을 줄까 신경이 곤두선 모습이다.
 ■7년간 35억원...왜곡된 유착 관계
 29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간사이(關西)전력은 이와네 시게키(岩根茂樹) 사장과 야기 마코토(八木誠) 회장 등 임원 20명이 후쿠이(福井)현 다카하마(高浜)정 모리야마 에이지(森山榮治)씨로부터 2011년부터 7년에 걸쳐 약 3억2000만엔(약 35억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았다고 밝혔다. 모리야마는 다카하마정에서 조야쿠(助役·부군수)를 지낸 인물로 지난 3월 사망했다. 원전 관련 공사를 수주하고 있는 지역 토목건설회사의 비자금이 모리야마에게 건네졌고, 이 자금 등이 간사이전력 임원들에게 제공한 금품의 토대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간사이전력은 세무 당국의 지적을 받고 내부 조사를 한 결과 임원 20명이 금품을 받은 것으로 판단했다.
 이와네 사장은 27일 기자회견에서 관련 사실에 대해 사과하면서 임원들이 받은 것은 “양복 상품권을 포함해 상식적인 범위를 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모리야마가 강하게 거절하는 등 반납하기 곤란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들 금품을 일시적으로 보관했으며 “의례적인 범위 안에 있는 것을 제외하고 전부 반납했다”고 밝혔다. 이와네 사장은 처음부터 금품을 거부하지 않은 데 대해 사업에 관해 조언·협력하는 지역 유력자인 모리야마와 관계가 나빠지면 원전사업에 영향이 있을 것을 우려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금품에 대한 “보답이 될만한 행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야기 회장은 간사이전력 발표와 달리 2006년부터 4년에 걸쳐 수 차례 금품을 받았으며, 세무 당국의 조사가 들어올 때까지 집에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모리야마가 원전 관련 공사를 수주했던 복수의 회사에 임원 등으로 관계하고 있었고, 비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토목건설회사는 2013년 이후 5년 간 매출액이 6배로 급증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전했다.
 ■오염된 ‘원전 머니’
 일본 언론은 이번 사건이 ‘원전 머니’의 불투명한 흐름에 의문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사설에서 “원전을 둘러싼 간사이전력과 지자체 간에 상부상조하는 유착 구조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다카하마정이 자리한 후쿠이현 와카사(若狹)만은 한때 ‘원전 긴자(銀座)’로 불렸다. 폐쇄가 결정된 고속증식로 ‘몬주’를 비롯해 원전 15기가 몰려 있어, 정부에서 내주는 교부금과 원전 주변에 형성된 상권으로 호황을 누렸다.
 “어업 이외에 주요한 산업이 없어 가난한 마을”이었던 다카하마정은 1974~1985년 다카하마 원전 1~4호기가 잇따라 가동되면서 전국 굴지의 ‘원전 마을’이 됐다. 다카하마정의 2019년 일반회계 예산안에서 원전입지지역 대책 교부금(18억엔) 등 원전관련 수입은 55억엔으로, 세입의 53%를 점한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이번 금품 수수 시기가 2011년 이후 원전 재가동을 두고 여론이 갈라졌던 시기와 겹치는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나자 당시 민주당 정부는 전국의 원전 가동을 전면 중단하면서 2030년까지 ‘원전 가동 제로(zero)’를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2012년 12월 재집권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이를 뒤집었다. 현재 정부의 새로운 기준에 따라 재가동에 들어간 원전은 9기로, 이 가운데 4기가 간사이전력이다. 일본 언론은 간사이전력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일으킨 도쿄전력 대신 원전 재가동을 견인해왔다고 지적했다.
 간사이전력은 2020년 이후 다카하마 1·2호기 등 원전 3기를 순차적으로 재가동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들 원전은 모두 40년이 넘은 것이어서 재가동을 불안시하는 목소리가 있었다고 니혼게이자이는 전했다. 원전 재가동을 위해선 지역 주민의 동의가 필요한데 이번 사건은 간사이전력에 대한 불신을 키울 가능성이 있다. 간사이전력 관계자는 “이번 불상사로 불신감이 강해지면 재가동 시기가 늦어질 수 있다”고 요미우리신문에 말했다.
 스가와라 잇슈(菅原一秀) 경제산업상은 “원자력 입지지역의 신뢰와 관련된다”며 간사이전력을 비난했다. 원전 재가동 노선이 흔들릴 것을 우려하는 일본 정부의 위기감이 반영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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