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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김진우의 도쿄 리포트

도쿄올림픽과 ‘오모테나시’

 “오. 모. 테. 나. 시.”
 2013년 9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총회에서 2020년 도쿄올림픽 유치위원인 아나운서 다키가와 크리스텔이 손동작에 맞춰 한 음절씩 끊어 말한 ‘오모테나시’ 연설이 화제를 모았다.
 ‘오모테나시’는 특별한 대접을 뜻한다. 다키가와는 “오모테나시는 손님을 마음으로부터 맞이한다는 깊은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 연설은 올림픽 유치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모테나시’는 그 해 일본 유행어 대상에 올랐다. 다키가와는 지난달 ‘차기 총리감’으로 거론되는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과 결혼을 발표했다.
 그렇게 유치한 도쿄올림픽 개최까지 1년이 채 안 남았지만, ‘오모테나시’ 전선에 먹구름이 가시지 않고 있다. 줄곧 지적돼온 폭염 등 날씨 대책을 좀체 찾지 못하고 있다.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7월24일부터 8월9일까지 도쿄의 날씨조건은 최악이다. 그나마 작년보다 나았다는 올해 도쿄 도심의 최고기온은 모두 30도를 넘었다. 그 중 6일은 35도 이상이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 평균기온이 27도, 2012년 런던올림픽 때는 24도였다.
 도쿄올림픽 조직위는 골머리를 싸고 있다. 이미 마라톤, 경보 등의 시작시간을 새벽으로 앞당겼다. 일부 도로에 열 차단제를 입히고 있지만, 사람 키 높이에선 오히려 기온과 자외선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13일 조정 시범경기가 열린 경기장 관중석에 인공 눈을 뿌리는 실험을 했지만, 관중석 온도는 별반 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이 이뤄진 수상경기장은 예산 문제로 관중석 절반만 지붕을 설치했다. 지난달 도쿄 오다이바 해상공원에서 열린 오픈워터 시범경기에선 화장실 같은 악취가 났고, 파라트라이애슬론 시범경기에선 상한의 2배를 넘는 대장균이 검출됐다.
 방송중계권 수입 때문에 7~8월 개최를 요구한 IOC에도 문제가 있지만, 일본 측 대응에는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 많다. 일본은 도쿄올림픽 유치신청서에 “이 시기는 맑은 날이 많고 따뜻해 선수에게 이상적인 기후”라고 했다.
 한 일본 언론인은 도쿄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일본의 ‘열화(劣化·열등화)’를 본다고 했다. 철두철미와 세심함은 옛말. 근본적인 대책보다 땜질식 처방으로 넘어가려 한다는 것이다. 폭염 대책으로 우치미즈(국자로 물을 떠서 거리에 뿌리는 풍습)를 제안하면서 “오모테나시 문화를 알리자”라고 우기는 데선 ‘정신 승리’를 보는 것 같다.
 ‘오. 모. 테. 나. 시.’
 도쿄올림픽의 ‘오모테나시’는 무엇을 지향하는 걸까. 아베 신조 정권은 도쿄올림픽을 ‘부흥 올림픽’으로 삼을 뜻을 노골화하고 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원전 사고를 복구했다는 점을 전 세계에 과시하겠다는 것이다. 2013년 도쿄올림픽 유치 연설에서 후쿠시마 원전이 “언더 컨트롤”(관리하에 있다)이라고 한 ‘정치쇼’가 되풀이될 공산이 크다.
 ‘오모테나시’는 누구를 위한 걸까. 일본 정부는 도쿄올림픽 때 욱일기를 경기장에 들고 오는 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과거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일본 우익들의 ‘헤이트(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데모’에 등장하는 욱일기가 ‘평화의 제전’에 펄럭이는 장면을 기어코 보겠다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현재 일본에선 혐한 감정이 고삐 풀린 채 분출하고 있고, 아베 정권은 이런 분위기를 정권 부양에 활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 후쿠시마 원전 문제에는 공통점이 있다. 철저한 반성과 책임, 자기혁신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도쿄올림픽에선 이 둘을 대충 덮고 넘어가려 하고 있다. ‘부흥(復興)’ 올림픽의 미명하에 ‘부인(否認)’ 올림픽이 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