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밀어붙이고 있는 ‘테러 등 준비죄’, 이른바 ‘공모죄’ 법안이 21일 국회 중의원 법무위원회를 통과했다. 이 법안은 중대 범죄를 사전에 모의해도 처벌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공권력의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은 물론, 온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는 ‘감시사회’로 다가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야당 반발에도 법안 처리 강행
여당인 자민당·공명당은 이날 중의원 법무위원회에서 야당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공모죄’ 법안을 통과시켰다. ‘여당 2중대’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일본유신회도 법안에 찬성했다.
정부·여당은 공모죄 법안을 오는 23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는 등 이번 국회 회기인 6월18일까지는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아베 총리가 친구가 이사장인 사학법인 가케(加計)학원의 학부 신설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이 최근 불거짐에 따라 참의원 심의가 늦춰질 것을 대비해 회기 연장도 검토하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망했다.
■테러 대책 이유로... 인권 탄압 등 오남용 우려
문제의 법안은 과거 세 차례 무산된 것을 아베 정부가 올초 다시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법안에 따르면 범죄 실행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적 범죄집단이 단체활동으로 중대한 범죄 실행을 계획하고, 이들 중 누군가가 범죄를 실행하기 위한 준비행위를 행한 경우 계획에 합의한 전원을 처벌할 수 있다. 실제 실행에 옮기지 않아도 처벌이 가능한 것이다.
정부·여당은 2020년 도쿄 올림픽 등 국제 행사를 앞두고 증가하는 테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 이 법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특히 이미 체결한 ‘국제조직범죄 방지에 관한 유엔 협약’의 비준을 위해서도 법안 통과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야당과 학계, 법조계 등은 이 법안이 인권 탄압과 비판여론 봉쇄 등 오남용 우려가 크다며 반대하고 있다. ‘준비 행위’ 등의 판단이 수사 기관에 의해 자의적으로 이뤄질 경우 법 적용 대상이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법안이 세 차례나 폐기됐던 것도 법 적용 대상 범위가 넓기 때문에 공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일반 시민 누구나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파업 등 쟁의 행위 중 벌어지는 돌발 행위를 중대범죄로 판단하는 등 시민·노동 운동을 억압하는 데 악용될 수 있고, 전화나 이메일 도청이 일상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하고 있다. .
아울러 공모죄 법안이 있어야 유엔 협약을 비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일본에는 이미 1999년 제정된 조직범죄처벌법 등이 존재하고 있어 이를 개정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날 국회 밖에서는 1만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모여 법안 통과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여론을 무시하지 말라”, “독재국가”라고 주장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앞서 일본변호사연합회가 전날 밤 국회 앞에서 주최한 집회에도 학자·영화감독·시민단체 등 600명이 참석해 법안 통과에 반대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수도대학도쿄의 기무라 쇼타 교수는 “헌법은 머리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해도 된다고 보장하고 있다. 단순히 범죄계획의 예비조사를 했다고 해서 처벌하는 것은 위헌의 우려가 있다”라고 말했다. 영화감독 수오 마사유키도 “수사수법으로 밀고에 의존하는 등 억울하게 죄를 덮어쓰는 사람이 늘 것”이라고 했다. 전수대학 야마다 겐타 교수는 “정부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세상으로부터 사라지게 하는 게 가능해진다. ‘언어’를 이유로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는 법률”이라고 비판했다.
■‘국민 감시 정권’의 실현?
일본 언론 매체들은 “공모죄 법안이 무고한 사람들이 엉뚱한 혐의를 받고, 권력의 부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전하고 있다. 나아가 정부가 ‘테러방지’를 이유로 ‘예방조치’를 강화·확대하면서 합법적으로 국민 모두를 감시하는 수단을 얻게 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일본변호사연합회는 ‘김사사회화를 초래해 시민의 인권이나 자유가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회장 성명을 발표했다.
실제 지난해 적용범위를 확대한 통신감청법대, 마이넘버제도(주민등록번호), 위치정보시스템 등을 자유롭게 구사해 국민들이 알지 못하는 새 프라이버시를 박탈당해 권력 앞에 완전한 나체가 되고 말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진보 월간지 세카이(世界)는 6월호에서 “방치하면 그러한(감시) 국가를 극우정권이 체현, 그 감시하에 놓인 전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이 간섭당하는 상황이 일본을 휘덮을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학계나 변호사단체, 시민단체에선 특히 극우·보수 색채가 짙은 아베 정권 들어 개인 인권이나 자유를 허물어뜨리는 상황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아베 내각 가운데는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교육칙어’에 공감을 표하는 각료들이 있다. 아베 정권은 도덕을 소학교(초등학교) 정식 과목으로 채택하고, 중학교 필수 ‘무도(武道)’에 군국주의 시절의 총검술을 추가했다. 세카이는 “이러한 흐름 자체가 자신들만이 정통이라고 믿고, 국민감시정권 실현을 위해 매진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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