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무니없는 일이에요.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합니까. 징용공 문제는 해결이 끝났다고 아무것도 안하면서 말이죠.”
사이토 이사오(齊藤勇夫·90)는 13일 저녁 요코하마 자택을 찾아간 기자에게 이 말부터 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조치를 비판하면서다.
그는 “지금 미쓰비시중공업이나 일본제철 같은 기업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비겁한 짓”이라며 “일본 기업이 징용공과 마주해 배상과 사죄를 협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이토는 오사카(大阪) 기시와다(岸和田) 중학교 4년 때인 1944년 7월 학도근로령에 따라 인근 조선소에서 1년간 일했다.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 수백명과 함께였다. 그가 속한 조에도 ‘김상’, ‘박상’이라고 불렀던 조선인 청년들이 있었다. 기술이 없는 학생들과 조선인들이 철판을 자르거나 자재를 나르는 등 “가장 아래 작업”을 했다고 한다.
작업환경은 감전사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등 형편없었다. 동급생 한 명은 잠수함 조립 작업 중 감전돼 10미터 아래로 추락했고 일주일 뒤 사망했다. “회사도, 학교도 모른다는 얼굴을 했다. 사고로 죽어도 병으로 죽었다고 했다”고 전했다. 조선인 사고사는 발표나 게시도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어느 조에서 누가 죽었다는 소문이 금방 돌았다. 다른 조선소에서 일했던 친구는 일주일에 1명 정도 죽었다고 말하더라”고 회고했다.
사이토는 이런 체험담을 아사히신문의 삽지로 배달되는 ‘정년시대’ 8월 첫 주 호(경향신문 8월14일자 4면 보도)에 투고했다. “책임감 때문”이라고 했다. 전쟁 체험자들이 점점 줄어드는 가운데 일본은 “없었던 일로 하려 한다”고 했다.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들과 함께 일했던 경험은 그에게 ‘원점’이라고 했다. 당시 노래가 마음에 들어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에게 부탁해 ‘아리랑’을 배웠다. 지금도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가사를 읊는다. 과거 석유·화학회사에서 일할 때는 한국과 거래를 많이 했다. 40년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한국인들도 있다. 그때 한국어도 공부했다.
그러나 과거 일했던 조선소를 운영했던 기업과의 거래는 의식적으로 피했다. 그는 “최저의 환경에서 목숨을 거는 일을 해야 했다”면서 “징용공들도 같은 심정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징용공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문전박대를 반복해선 안된다. 정치문제화하지 말고, 일본 기업과 징용공이 직접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년퇴직 뒤엔 한국 근현대사를 알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 책을 일본어로 번역했다. <덕혜옹주> <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을 밝힌다> <한국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 등을 옮겼다.
한·일 갈등으로 민간까지 감정이 악화되는 것에는 우려가 없지 않다. 그는 “한국인 친구가 올 초 세상을 떠났다고 그 아들이 소식을 전하면서 조만간 찾아뵙겠다고 했는데, 이런 이상한 관계에서 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본에선 종전일(패전일)인 15일을 앞두고 심경이 착잡하다. 직업군인이었던 부친은 필리핀 전장에서 사망했다. 영양실조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할 뿐 유체도 찾지 못했다. 6남매의 장남으로 집안을 이끌어야 했다. 그는 일본이 “시시한 전쟁을 했다”고 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에 대해선 “역사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이토는 “일본 정부는 위안부나 징용공 문제가 해결됐다고 하지만 해결되지 않았다”면서 “역사 문제에 대해 한국과 좀 더 의견을 맞추고, 해결이 끝났다고 외면하는 자세는 고쳤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어로 ‘한오백년’을 말했다. 그는 “한·일관계가 나쁜 상태로 이대로 가면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할 수 있다”며 “자손들에게 부(負·마이너스)의 유산을 남겨선 안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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