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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람들

“가해자가 반성 없이 피해자 행세”...강제동원 연구자 다케우치 야스토

 “강제동원이 없었다든지, 피해자 배상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든지, 소녀상이 일본인의 마음을 짓밟는다든지, 가해자가 (피해자의) 마음을 짓밟은 역사를 반성하지 않고 피해자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역사연구가 다케우치 야스토(竹內康人·62)는 지난 10일 도쿄 재일본 한국YMCA에서 만나 “진짜 해결은 진상을 명백히 밝히고, 피해자의 존엄을 회복하고, 이런 역사가 제대로 전승되는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강제동원 문제를 30년 넘게 연구해오면서 ‘전시 조선인 강제노동 조사 자료집’, ‘조사-조선인 강제노동’,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과 강제노동 Q&A’ 등을 냈다.
 다케우치는 현재 일본에서 ‘가해의 증언’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데 우려를 나타냈다. “당사자 세대가 돌아가시면서 강제동원이 있었던 사실을 말하는 이들이 사라지고 있는 반면, 역사를 왜곡하려는 사람들은 강제동원이 없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이들을 내세우고 있다”면서 “젊은 세대들의 관심도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패전일인 8월15일을 앞두고 일본에선 전쟁으로 인한 피해와 고통을 강조하는 TV 프로그램이나 신문 기획이 대부분이다.
 그는 “일본은 문서(한·일 청구권협정)상 해결했다는데 피해자는 존재하고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일본 기업이 화해한 경우도 있고, 사회보험료를 지불한 경우도 있고, 최근에도 유골을 돌려준 경우도 있다”면서 “문서상 끝난 것으로 해도 끝나지 않은 현실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에 강제동원됐다가 사망한 뒤 반환되지 않은 유골의 존재는 이 문제의 해결이 끝난 게 아님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다케우치가 조사한 홋카이도탄광 자료에는 강제동원 노동자의 구타 살인을 은폐한 내용이 나온다. 이 탄광에서 도망간 조선인 3명 가운데 1명은 나무몽둥이로 구타를 당해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심장마비로 보고됐다. 그는 “강제동원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의 문제”라며 “한사람의 생명이 전쟁 동원으로 빼앗기고 그로 인해 다음 세대의 생명도 빼앗긴다는 것, 미래를 빼앗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천황제’와 ‘야스쿠니신사’ 문제를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식민지 조선의 주권자는 천황(일왕)으로, 전시의 강제동원은 그 통치의 일환이므로 천황제의 식민지 통치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야스쿠니에 마인드컨트롤 돼 ‘야스쿠니의 어머니’, ‘야스쿠니의 아들’이 됐다”면서 “야스쿠니의 전쟁동원 책임, 국가의 거짓말을 포착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왕을 정점으로 한 국가 신도(神道)의 중심으로 침략 전쟁 중에 전사한 군인들을 신으로 모시며 전쟁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했다.
 다케우치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은 한국 측의 청구권을 깨부수는 게 목적이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개인청구권이나 손해배상청구권을 소멸시키고 싶어도 이론상으로는 소멸시킬 수 없었다고 했다. 당시 담당 외무성 서기관이 “원칙은 전부 소멸시키는 것이지만, 그 안에 소멸시키는 게 원래 이상한 것이 있다”, “이론적으로 어디까지를 소멸시키고 어디까지를 살리면 좋은지 하는 문제와 정책적으로 어디까지를 소멸시키지 않으면 안되는가라는 문제가 있었다”고 회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당시 회의록 등을 읽으면 ‘모든 청구권’이라는 게 재산 청구라는 게 명백하다”면서 “개인청구권과 손해배상청구권은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기본권, 인권이니까 소멸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일본의 행태는 한국에 사는 사람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식민지주의가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조약을 깼다면서 일본을 피해자로 해서 경제 보복을 하는 움직임을 극복해야 하는 게 일본 사회의 큰 과제”라고 덧붙였다.